코로나19 확진으로 자가격리 중이에요. 병원에 가서 양성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했던 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였어요. 전 조직 밖 노동자로 혼자 하는 일이 많은데요. 대체로 내가 나에게 기한을 정해주고 스스로를 움직이도록 해야 하죠.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아플 때는 제 안에 ‘매서운 관리자'가 목소리를 키웁니다.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해? 모보이스도 보내야 하고 소개해야 할 스피커의 글도 있잖아. 아프다고 자꾸 쉰다고 하면 구독자들이 좋게 생각하겠어? 그렇게 죽을 것처럼 아프지 않잖아. 침대에 앉아서 뭐라도 해야지.”
안 그래도 아픈데 다그치는 목소리로 시름시름 시들어가고 있으면 어디선가 ‘다정한 마음이'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요.
“아픈데 쉬어야지. 코로나 확진이면 자가격리까지 시키면서 일하지 않도록 하잖아. 친구나 동료였다면 당연히 푹 쉬라고 했을 텐데, 왜 너에게는 그러지 않는 거야? 쉬어도 괜찮아. 잘 쉬는 것도 중요해.”
갑자기 아플 땐 제 안의 ‘감독관'과 ‘마음이'가 다퉈요. 바로 아픈 나를 다독이고 쉬도록 결정하지 못해요. 과거 조직을 다닐 때는 아픈 몸을, 나약한 모습을 숨기도록 강요받으니 매번 이 싸움에서 감독관이 이겨서 겉으로는 씩씩하게 지냈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이제는 감독관의 말이 사회가 만든 혐오와 불안의 말임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마음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혼잣말로 여러 번 되뇌어요. “슬기야 쉬어도 돼. 쉬어도 괜찮아.” 이번에도 겨우 마음이의 편을 들어줬어요. 다음에는 덜 어렵게 다정한 말을 따라가 보고 싶어요.
모어데즈를 만드는 일은 성실하도록 애쓰면서 불쑥 덜컹거릴 거예요. 우리 일상이 그러하듯 말이죠. 그래도 계속 함께해요. 날이 점점 추워져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돌보며 눈부신 나날을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