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중요한 문제구나”
☕️ 페미니즘 활동하는 이유
이한 자신과 단체도 소개해주세요.
무수 막막하다… 서로 소개해 주는 거 어때요?
이한 그럼 제가 먼저, 모어데즈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와 함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은 팀입니다. 사회에 이견이 많은데 특히 접점이 많이 없는 분야 중 하나가 젠더와 페미니즘이죠. 여기서 접점을 만들기 위해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서 활동하고 있다.
무수 좋은데요. 모어데즈에서 공동체라는 표현 쓰지 않았던거 같은데 느껴지는군요.
이한 제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요.
무수 덧붙이자면, 모어데즈는 혐오문제를 말하는 곳이에요. 혐오문제는 ‘내가 나로 살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문제를 마주한 여성, 장애인, 이주민, 퀴어, 동물까지. 그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혐오문제를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며 활동하고 있어요. 그럼 이제 제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단체를 소개해볼게요.
이한 되게 흥미로운 경험이다. 남의 입에서 우리 단체 이야기 듣는 건 쉽지 않거든요.
무수 한국 사회의 왜곡된 남성성을 남성 당사자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목소리 내는 단체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남성 동료간의 관계, 친밀함 등 여러 중요한 돌봄의 이슈를 다루잖아요.
이한 맞아요. 남성이 아닌 분도 있지만 어쨌든 남성성에 대한 집중해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것이 저희의 활동 목표예요. 열심히 해야죠. 갈 길이 멉니다. 가장 핫하고 가장 문제적인 이슈.
무수 단체를 언제 시작했다고 하셨죠?
이한 ‘남함페’는 2017년부터 시작했어요. 그때 책 모임이었어요. 저도 참여자로 시작했는데, 모인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니 그 깃발을 혼자 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하게 됐죠.
무수 오래 됐다. 이제 10년 차네요.
이한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요. 이상하네. 엊그제 같은데 되게 오래 활동했다는 이야기를 최근에도 많이 들었어요. 오래 했구나 싶더라고요.
무수 왜 이 단체를 만들게 되었어요?
이한 단체를 만든 거창한 이유를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 굵직굵직한 사건과 페미니즘 리부트를 이야기하는 편이지만 여기서 편하게 말하자면, 저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고 싶었거든요. 근데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성혐오와 성차별 때문에 되게 어려워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친구, 애인과 같은 사람들이요. 그래서 이 문제가 참 심각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에서 귀동냥하다가 이게 나한테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내가 고민하는 몸, 삶에서 불편함을 주는 젠더박스 등이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로 해석되는거 같더라고요. 여성들만을 위한 어떤 걸 내가 하겠다고 했으면 이렇게 오래 못했을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여성에게 중요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 모든 존재들에게도 중요하다고 느껴서 오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어요. 무수님은 어떻게 이 활동을 시작했고, 왜 계속 활동하고 있어요?
무수 모어데즈는 2021년에 시작했어요. 개인적인 동기를 이야기하자면, 제가 페미니스트가 되면서 주변에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되게 많았는데요. 저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비건을 시작했고, 그 후에 자연스레 퀴어, 장애인, 이주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 주변 이들은 정말 여성 문제에만 집중하더라고요.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는 친구들도 있어서 그게 참 어려웠어요. 또 비건을 하니까 사람을 만나서 밥 먹는 것부터 걸리는거죠. 중요한 관계 안에서도 온전히 공감받기 어려웠어요. 그럴 땐 내가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에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외로움이 커졌고 찾아 나서야만 했어요. ‘정말 나만 그런가, 아닐텐데’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빨리 시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뉴스레터를 시작했어요. 혐오문제는 긴 호흡의 글이 잘 맞기도 하니까요. 구독자들이 하나 둘 생겼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공감하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더 용기를 내고, 그 용기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는 자리에 찾아갔죠. 덕분에 저와 비슷한 동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니 활동을 지속하는데 전보다 큰 힘이 들지 않더라고요.
이한 늘 궁금한게 있었어요. 여성 페미니스트의 경우 페미니즘을 접하는 과정이 되게 자연스럽게 넘어가더라고요. ‘그냥 어느 순간 접하게 됐어’ 라고 많이 이야기하셔서 그게 궁금해요. 사실 가만히 알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계기들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요.
무수 제가 스타트업에 다녔거든요. 빠르게 변하는 조직이다보니 작은 이슈에도 되게 예민한 편이었어요. 그때 당시 회사에서 경력보유여성을 채용하겠다면서 ‘일과 가족을 모두 챙기세요’ 이런 문구를 담은 콘텐츠를 올린 거예요. 이걸 보고 항의가 들어온거죠. 내부에서는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이야기하다가 한 동료가 이건 페미니즘을 말하는 거라고 해주셨어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그 단어를 제대로 마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분에게 알고 싶다며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고, 그때 알려준 책이 <페미니즘의 도전>이었어요. 저의 첫 페미니즘 책이었죠. 이걸 읽고 진짜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이 다시 재정립되는 시간이었죠. 그 이후 책 <82년생 김지영>이 나와서 연달아 읽으며 내가 사회에서 어떻게 위치하는지 알게 되었고,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어요. 한님은 혹시 페미니즘을 마주하게 된 어떤 결정적인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한 외부에 말할 땐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을 이야기하는데, 그건 되게 많은 큰 줄기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제와서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때 한번으로 제가 바뀌진 않았거든요. 오히려 그것보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의 영향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당시 만났던 여성 애인도 페미니스트였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페미니즘 리부트의 수혜를 받아서 엄청나게 열정적이었어요. 처음엔 많이 싸우고 다투고 언성도 높이고 하다가 점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되었어요.
무수 그때 만났던 애인이 가장 큰 몫을 하셨네요.
이한 그래서 지금도 생일 때마다 선물 보내고요. 여전히 좋은 사이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수 친구로 잘 지내니 좋네요.
이한 이것도 페미니즘 덕분인 것 같아요. 왜냐면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한 것을 페미니즘이 다 깬 거예요. 당연히 이래야지 하던 것이 무너지니까 그럼 모든 걸 다 물어볼 수 있겠더라고요. 어차피 다 박살 났으니까. 그래서 관계에 대해서도 이렇게 할 수 있는거죠.
무수 너무 좋다. 정말 <어색한 사이> 프로젝트를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네요.
“문제의 핵심은 관계예요”
☕️ <어색한 사이>의 시작
무수 제가 먼저 연락 드렸었잖아요. 모어데즈 모임인 라이츠에서 <젠더를 넘어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자리를 마련했는데 모집이 잘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이 모임을 남함페에선 관심있게 봐줄 것 같아서 연락했거든요. 흔쾌히 만나자고 해서 이야기를 나눴죠. 저는 라이츠로 같이 뭘 할 수 있으려나 정도만 생각했는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같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면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좋은 기획과 아이디어들이 나왔던 것 같은데 어때요? 한님의 기억은?
이한 사실 이게 저희 계략 중에 하나였는데요. <어색한 사이>는 제가 예전부터 되게 하고 싶었던 활동이었어요. 몇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저도 그렇고, 애인을 통해서 페미니즘을 접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저희한테 연락오는 것 중 하나가 ‘남자친구가 이상하다’예요. 페미니즘 얘기만 하면 싸우는 케이스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희가 ‘이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욕구는 계속 있어서 여러 모임을 열었는데 사실 모임에 찾아오는 건 적극적인 분들이고, 매번 모임을 여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들잖아요. 그리고 여럿이니 잘 맞기가 어렵고요. 이 지점에서 아쉬움과 갈급함이 있어서 이들과 면대면으로 좀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이대남’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 말이 전략적이지 않고 사실적이지도 않고, 되게 무의미하기도 했거든요. 누군가를 퉁쳐서 하는 말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요. 20대 남성들도 다양하고 이들이 내는 목소리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텐데, 그걸 가까이에서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 해줘야 하잖아요. 거기에 가장 적합한 게 저희 남함페 단체라고 생각했어요. 안희제 작가의 책 <증명과 변명>을 되게 재밌게 읽었는데 거기에도 비슷한 과정이 나오거든요. 희제님이 친구 우진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줘요. 그걸 통해 우리가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게 되고 그 사람과 함께 많은 벽을 넘는 경험을 할 수 있는거 같았어요. ‘우진을 찾아서 희제가 되어주자’ 저의 목표였어요. 페미니스트 주변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을 우리가 대신 만나자고 몇 번 시도했는데 저희도 바쁘다보니 못했거든요. 무수님과 이 활동을 같이 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도한거죠.
무수 우리가 공통적으로 봤던 콘텐츠가 책 <증명과 변명>과 시리즈 <소년의 시간>이잖아요. 저도 이 콘텐츠를 보고 <젠더를 넘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라이츠 모임을 만들었어요. '남성성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구나’ 그걸 크게 느꼈어요. 돌아보니 정말 남성들이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운 거예요. 저는 상대적으로 좋은 여성 동료와 친구들이 많고, 이들과 잘 연결되는 환경에 놓여있어요. 한편 저와 같은 남성이라면, 자신과 공감할 수 있는 남성 동료를 별로 없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들한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임을 기획했는데, 한님이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자고 얘기해주신 것이 반가웠어요.
이한 저는 <어색한 사이>가 적합한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가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을 만나고픈 욕구는 늘 있지만, 다짜고짜 만나는 건 어렵잖아요. 근데 추천인이 있으면 추천 받은 사람이 우리에게 오기 좀 더 편하고 우리도 그 사람을 만나기에 덜 부담스러운 거예요. 그리고 추천인이 있기에 우리가 이 사람과 한 대화를 자신의 가까운 사람과 더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어색한 사이>가 한 번의 만남일 뿐이지만 이 사람에겐 어떤 계기가 마련되고, 이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바꾸는 일이 되죠. 그래서 저는 일대일 만남이지만, 한 명만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수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관계’로 여기기 때문에 추천인을 떠올린거고, 확장의 가능성이 생기는 구조가 만들어진거 같아요.
이한 맞아요. 그래서 잘 굴러가고 계속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수 <어색한 사이> 이름도 많이 고민했잖아요. 우리한테도 어색한 사이들이 있고. 어색한 건 뭘까요?
이한 어색한 순간이 있겠죠. 그게 유난히 많은 관계도 있고. 대화가 되지 않는 느낌.
무수 저는 가족이 어색하거든요. 제가 남동생도 2명이고 아버지도 있다 보니까 가족 구성원의 과반이 남성인 거예요. 그러면서 만들어진 저희 집안의 분위기는 데면데면하다는 것이에요. 가족 안에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거나 마음을 진솔하게 나눈 경험이 많이 없어요. 아버지랑 단둘이 있을 때는 너무 어색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라, 전화를 하면 아버지는 5분도 안되서 끊으려고 해요. 그러면 제가 질문을 건네서 ‘오늘은 뭐했어? 몸은 괜찮아?’ 하면서 이야기를 하죠. 그래도 되묻는 질문이 별로 없으니 대화를 이어가기가 늘 어려워요. <어색한 사이>에 남동생 중 한명도 추천하고 싶어서 이야기 했거든요.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니 별말이 없더라고요. 아직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가봐요.
이한 저도 가족이 늘 그래요. 요즘엔 다양한 만남을 하다보니 유별나게 어색해지는 사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분들을 생각하면 나랑 결이 안 맞는 사람일 수 있지만, 어떤 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성성 때문에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꺼린다거나 아니면 상대를 돌보고 걱정하고 궁금해하는 걸 불필요하거나 낯뜨겁게 여기는거 같더라고요. 그런 경우에 어색해지고 힘들어요. 진이 빠지죠. 이건 내향적인 것과 정말 달라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런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내향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넘어가기보다 ‘왜 이렇게 유난히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궁금해요.
무수 한국의 남성성이나 맨박스가 자기 마음을 돌아보거나 얘기하는 걸 등한시하게 만들잖아요. 저도 그게 잘 안되면 대화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그러면 그 사람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지는 거잖아요.
이한 제가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과거의 저에게 떠든다는 건 재밌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보거나 내가 아는 재밌는 이야기 하는거죠. 내 경험이나 고민 같은 건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건 재미도 없고 불필요하고, 내가 알아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저한테 페미니즘을 알려준 애인과 친구들은 늘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예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있어요. 길가에 핀 꽃을 보면서 친구들이 예쁘다고 하면서 되게 좋아하며 떠드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 되게 충격적인 장면이었어요. 길에 수많은 꽃이 있고 별로 보지도 않았거든요. 저는 그냥 목적지로 가는 수단인데, 왜 이 친구들은 순간 순간을 향유하며,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지? 그게 충격이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인생에는 0과 1만 있는 게 아니고 목적과 결과만 있는게 아니고 그 과정에 이르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중요하다는 걸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진짜 고마워요.
무수 왜 그렇게 만들까요? 자신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게 두려워서 그럴까요?
이한 그것도 엄청 크지요. 그리고 우리가 경쟁적인 사회에 살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없는 거예요. 성공하지 못하면 루저가 되니까. 특히 남성들 사이에선 위계질서가 되게 중요하게 여겨지잖아요. 밀려나면 ‘찌질이’가 되는 거예요. 보고 예쁘다는 마음을 느껴도 외면하게 되고, 그러면 더 무뎌진다고 생각해요. 그게 남성들을 굉장히 크리티컬하게 만드는 문제이지 않을까요.
무수 본래 그런 모습이 있는 남성들도 많을텐데, 그걸 표현하거나 나눌 시간과 공간이 없는 거예요. 남성 또래 문화 안에선 좋은 걸 가진 이들도 잘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거 같아요. 그게 참 안타까워요.
이한 맞아요. 그래서 저는 이걸 더 빨리, 더 많은 남성들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너무 늦으면 더 무뎌지기 때문에 잘 돌아오기 힘들어요.
무수 나중에는 ‘나는 원래 감정이나 관계에 관심 없어’라고 여기게 되죠. 근데 그런 것에 관심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요?
“우정을 나눌 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 <어색한 사이>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
무수 <어색한 사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지 나눠볼까요?
이한 회색 지대에 있어서 도움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애인이랑 페미니즘에 대해 나누다가 싸웠다거나 페미니즘이 궁금한데 잘 모르겠는 분들이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남성들이 꽤 있는데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없어요. 친구들은 페미니즘은 이상한거라고 해버리고, 가끔 술이나 마시지 고민을 나누지 못해요. 이런 부분에서 어려워하면서도 계속 빠져나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가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무수 젠더가 다른 사람과 연인이 아닌 친구가 되고 싶은 남성들을 만나고 싶어요. 한국에서 남성들은 연인을 만나는 걸로 많은 걸 해결하려고 하는거 같아요. 연인이 생기면 그 사람하고만 관계를 이어가죠.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지점에서 젠더가 다른 사람을, 특히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잖아요. 왜 우정을 나눌 수 없을까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 마주하고 싶어요.
이한 너무 공감해요. 그런 문제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심한 집착, 더 나아가 폭력이 발생하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많은 남성들이 외로워하는 것 같아요. 악순환의 굴레이죠. 남성들끼리는 재밌는 걸 안해요. 맨날 밥먹고 술만 마셔. 근데 여성 애인을 만나면 다른 문화 생활을 하거나 돌봄을 받거나 해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자꾸 애인만 찾아요. 그게 아니라 여성 친구도 돌보고 남성 친구와도 우정을 나눠야죠.
무수 그러니까요. 결국에 주변에 좋은 친구와 동료, 지인의 관계망이 없으니까 계속 연인과 가족으로 회귀하게 되어 악순환인 거잖아요. 저는 그걸 좀 깨고 싶어요. 우정으로 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한 친구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너무 좋습니다.
“판단하기 때문
아닐까요?”
☕️ 페미니즘 대화가 어려운 이유
이한 무수님은 페미니즘이나 혐오문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가요?
무수 저는 모어데즈로 혐오문제를 말하는 활동을 하지만, 각잡지 않으면 페미니즘이나 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잘 되지 않더라고요.
이한 맞아요. 저희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피하고 꺼리잖아요. 왜 이렇게 어려워하고 싫어할까요?
무수 판단과 평가가 들어가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페미니즘이 좋은 가치라고 여기지만, 이걸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되게 애를 써요. 사람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 않는데 단숨에 서로를 판단하고 구분 지어요. 그래도 되나요? 사실 저도 예전에는 빨리 판단하고 멀어져야 힘들지 않으니까 그렇게 했는데, 요즘엔 계속 마주하려고 해요.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혹은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질문을 던지거나 대화를 시도해봐요. 사람들은 자신이 부족하거나 나쁜 사람으로 취급되길 원치 않는데,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 호불호가 강해지니까 더 이야기를 안하는거 같아요.
이한 너무 재미있고 중요한 이야기예요. 저는 최근에 민음사 유튜브에 나오는 김민경 씨를 되게 좋아하는데요. 어떤 영상에서 한 출연진이 영화 얘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영화를 말하면 나에 대해 너무 알게 되거나 평가하게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김민경 씨가 웃으면서 자신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고 해요. 영화는 커다란 자신의 모습 중 단지 하나일 뿐이라고요. 정치색도 단지 하나일 뿐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인간은 다양하고 입체적이고 심지어 변하는 존재인데 평가한다는 건 누군가를 납작하게 찍어버리는 것이라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무수 이 프로젝트에서 페미니즘 대화를 한다고 하면, 되게 설교할 것만 같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조심하는 건,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 점. 평가나 판단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설명도 적어놨잖아요. 누군가를 설득한다고 해서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게 좋은 방식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마주하기, 작은 영향을 주고받기. 일상에서 이게 중요하지 않은가요. 그걸 하는게 <어색한 사이> 같아요.
이한 맞아요. 동의해요. 그래서 시작할 때 꼭 그 얘기해요. 이건 교육이 아니고, 교양 쌓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화’다. 근데 왜 만나야 할까요? 궁극적으로 그런 고민이 들잖아요. 피곤하게 왜 만나야 하지? 점점 그렇게 되는 사회이기도 하고요. 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무수 저는 어떤 지점에서 되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만나야 하는 이유는 내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면 사람이 어긋나기 쉬워지는거 같아요. 그런 일이 많이 있었잖아요.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다치고 죽게 만드는 사건들. 특히 윤석열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도,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낀 이들이 그곳에서 자리를 찾은거 같았어요. 거기선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왔다고 반겨주니 소속감을 느껴요.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필요하잖아요. 자리가 없다고 느낀 누군가가 폭력적으로 변하고, 이상한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그런 환경에서 제가 사는거니까요. 저는 그게 싫고 두렵고 피하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살만해졌으면 좋겠어요.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 맺기’를 잘하고 싶어요. 또 믿는 가치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존재 자체로 느끼는게 엄청 많아요. 정말 물리적으로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한 너무 공감해요. 사실 피할 길이 없어요. 나랑 잘 맞는 사람만 찾아내고 찾아내면 결국 아무도 못 만난다고 생각해요. 우린 다 다른 존재니까. 그리고 세상엔 당연히 피할 수 없는 존재들도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건 더 많은 접점을 넓혀 나가는 것. 그래서 더 많은 화학 작용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죠.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반응이 재밌기도 하고요.
“페미니즘 대화를
시도하면 좋겠어요”
☕️ <어색한 사이>가 만들
작은 변화
무수 그러면 <어색한 사이>가 어떤 작은 변화를 만들길 기대해요?
이한 책 <증명과 변명>에 나온 희제와 우진의 우정이 더 확장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곁에 분명 우진이 있을 거예요. 저도 제 안에서 우진을 많이 발견하거든요. 그러면 서로가 잘 들어주는 희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조금씩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을 이 프로젝트를 보면서 많이 시도하면 좋겠습니다.
무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되게 말하면 큰일날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워요. 결국 마주하고 말해야지, 해결책을 같이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어려운 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페미니즘을 주제로 좋은 대화를 나누면 좋겠어요.
이한 너무 좋아요. 앞으로 그렇게 잘될 거라고 믿습니다.
무수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걸 읽어볼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볼까요?
이한 독자에게 약간 변명도 하고 싶어요. 글로 전하다보니 우리가 느꼈던 표정, 웃음, 공감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을까 염려되는 점도 있어요. 그런데 마음을 열고 판단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해보는 작업으로 한번 읽어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무수 저도 잘 읽어주길 바라고요. 좋으면은 꼭 저희한테 피드백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게 활동하는 사람한테 큰 기쁨이잖아요. 우리가 받는 것도 없는데…좋은 피드백을 많이 나눠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희가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 있으니 읽고 추천할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한 기대해주세요. 정말 좋고, 재밌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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