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   혐오감을 느끼는 건 본능이 아닐지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영화에서 어인을 처음 봤을 때 그 생명체가 덩치도 크고, 좀 위험해 보이고, 낯선 존재니까 우리가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는 거잖아요. 무서움이나 두려움 같은거죠. 근데 이게 만약에 본능이라면 그러면 혐오문제가 발생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러면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또는 극복해야 하는 게 맞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됐는데 혐중 시위도 제가 문제라고 보는 이유는 누군가를 혐오하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들 수 있죠. 그런데 그걸 표출하는 것이 괜찮은가? 혐오감을 느끼는 게 문제일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남겼던 질문이에요.

무수   혐중 시위는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현상 같다고 느끼는데, 이런 현상이 갑자기 생기진 않잖아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런 혐오감이 되게 많이 쌓아져 왔을 거라고 느껴졌어요.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들을 혐오한 적이 없었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저도 있었거든요. 제가 사는 곳이 대림동이랑 정말 가까워요. 맨날 서울 지하철 2호선 갈아타고 지나가는 곳인데 그 동네에 제대로 가보지 않고 왜곡된 기사를 보니까 그 동네나 사람들이 약간 두렵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러다 재작년쯤에 그곳에 사는 분을 인터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문제를 나도 마주해야지, 혐오 문제를 말한다면서 그 동네와 사람들을 편하게 느끼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을 만나기 전에 대림동을 혼자 여러 번 갔었어요. 처음엔 저녁 시간에 갔거든요. 긴장해서 몸이 좀 굳고 두렵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낯선 것에 대한 반응인데 저한테 왜곡이 있었으니까 심하게 느낀 거죠. 근데 10~20분 지나니까 신기하게 괜찮아졌어요. 그 동네에서 들리고 보이는 낯선 말 때문에 어색한 것이었지. 그땐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장 보고 있었거든요. 별반 다를 거 없는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다음에 더 편한 마음으로 그곳을 찾아갔어요. 혐오감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렇게 길어질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우리가 이 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시간이 너무 긴 거예요.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으니까. 싫다고만 외쳤지. 그 사람의 이름이 뭔지, 어떻게 사는지, 대화를 나눠본 적 없잖아요.

소담   그들의 입으로 이야기를 접해보지 못했잖아요. 근데 만나보면 평범한 사람이고 오히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을 수 있잖아요.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에 살게 되었나, 이야기 듣다 보면 흥미로울텐데 듣지 않으니까 모르죠. 그게 저도 혐오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거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고 늘 뉴스에서만 봤어. 그러면 그냥 나랑 다른 사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근데 막상 만나보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나랑 잘 맞는 사람일 수 있는데 그럴 기회가 없잖아요. 우리 사회는 섞여 있지 않고 자꾸 분리하니까 말씀하신 대로 혐오감을 좋은 감정으로 바꿀 기회가 없으니 더 악화하는 것 같아요.

무수   그게 구조적인 차별인 것 같아요. 결국에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것. 왜 못 만날까요? 왜 회사에서 장애인을 못 만나고 일상 모임에서 이주민을 못 만날까요? 혐오가 차별이 되어 우리가 이 구조를 깨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난 이 존재들한테 관심없고 정말 만나기 싫어!’ 이런 사람들을 바꾸긴 어려운 거 같아요. 근데 뭔가 달라지고 싶고 그들이 궁금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 마음이 있다면 스스로도 작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계속 그런 현장에 나를 놓아보는 것. 그러니까 전장연 시위도 기사로만 보지 말고 한번 가보는 거죠. 가보면 되게 웃음이 많아요. 나눔이 넘치고 다정하고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추고 그런 곳이 저한테는 집회거든요. 축제 같은 자리. 근데 멀리서만 보면은 너무 험악한 거죠. 경찰이랑 싸우고 있고 드러눕고 그러니까. 근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더 많거든요.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그곳에 날 데려놓는 것 추천해요. 느끼는 게 정말 많을 거예요. 또 추천하고 싶은 건 인터뷰. 기사화된 것보다 그 존재의 목소리가 담긴 글을 보면 만났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소담   영화나 책이 될 수도 있겠죠. 최근에 <위키드 2>를 봤거든요. 그것도 혐오와 차별을 다루고 있는 동화 같은 영화예요. ‘오즈’라는 세계에서 동물들이 차별받게 되거든요. 그 세계관 안에서는 동물들이 인간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동물한테서 그 언어를 빼앗고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가뒀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언어를 잃게 된 사람들, 가둬진 사람들, 시설에 갇힌 사람들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인 줄 몰랐는데 흥미로운 작품이었어요.

무수   콘텐츠가 곧 이야기니까. 이야기의 힘이 엄청 강해요. 그러니까 그 이야기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우리가 보고 읽어야 하는거죠. 그래서 소담님이 만드는 독서모임도 활동의 장이에요. 좋은 이야기를 같이 보고 나누고 이야기하잖아요. 

소담   감사합니다. 콘텐츠가 중요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안 좋게 그리는 것이 위험할 수 있는 거죠. 우리 나라 영화에서 계속 중국 동포를 차별적으로 그리는 것이 문제인데, 그걸 창작의 자유라고 볼 수 있는가. 특정 집단이나 사람들에 대해서만 지속적으로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이 창작의 자유인지는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무수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만드는 것이고 그게 혐오와 차별로 이어지는 거죠.

소담   갑자기 눈물 날 것 같아. 어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니까. 

무수   영화에서 ‘혼자’라는 얘기 되게 많이 나와요. 특히 자일즈도 게이라 탄압받는 분위기로 그려지잖아요. 자일즈가 어인의 옆을 지키면서도 ‘너도 혼자니?’ 라고 말하고 친구 엘라이자에게 ‘나는 너밖에 없다’고 말해요. 그래서 다정하게 다가왔던 관계가 엄청 강렬하게 느껴졌을거 같더라고요. 우리한테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소담   이 질문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저는 살면서 도움을 진짜 많이 받았거든요. 주로 혼자 여행하는데 그러다보니 여러 일을 겪어요. 근데 늘 낯선 누군가가 저를 도와줬어요. 예를 들면 제가 22살 때 혼자 배낭 메고 동남아를 여행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인도네시아의 어떤 지역에서 전 재산이 든 지갑과 여권을 잃어버려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어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갔던 공항에서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제가 중국어를 조금 할 수 있는데 공항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계신 거예요. 인도네시아에 사는 화교인 거죠. 그분한테 가서 내가 이런 상황이라고 했더니 그분이 저를 자신의 집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기사가 있는 차를 보내 제 지갑을 찾는 걸 도와주셨어요. 근데 그냥 공항에서 만난 생판 모르는, 중국어 더듬더듬 하는 한국 여자애, 좀 꼬질꼬질하고 배낭메고 있는 그런 사람을 집까지 데려가서 도와주신 거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가 인천공항에서 만난 낯선 외국인이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우리 집에 가서 재워주고 먹여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내가 혼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은 기억나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게 진짜 고맙게 느껴졌고 저도 그걸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한테 갚진 못하겠지만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만큼 도와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해요.

무수   내가 혼자라고 느끼고, 힘들었던 순간에 도와줬던 인상적인 사람이 있었던 거구나. 귀인들이 있어서 좋다. 도움받으면 또 도움을 주는 선순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소담   그래서 지하철에서 캐리어 들고 낑낑거리는 사람들 보면 잘 들어줘요. 전 힘이 세거든요. 제가 잘하는 일이에요. 무거운 거 들어주기.

무수   나도 좋은 얘기하고 싶은데…어른이 돼서 도움받은 건 많은데, 혼자라고 느꼈을 때는 어린 시절이 떠올라요. 내가 취약하고 상황을 인식하지도 못할 때, 그때 저는 되게 외로웠던 사람이었어요. 그때 나를 일으켜준 사람이 누구였지? 내가 어떤 순간에 일어났지? 하면 혼자인 거 같아요. 

소담   혹시 그때는 동생들이랑 같이 안 살았나요?

무수   가족들이 다 있었어요. 다 같이 살아도 혼자더라고요. 동생들은 나이 터울이 있다 보니까 제가 챙겨야 하는 입장이었고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가족 안 다른 관계도 맺어지지 않았어요. 최근에 책 <외로움의 해부학>을 읽으면서 느낀 게 정서적 방임이 심한 가족 분위기가 있었다는 거예요. 이게 우리 원가족만이 아니라 아빠의 가족 대대로 그런 문화가 있어요. 어떤 사건이 있지 않았는데 내가 부모와 잘 지내지 못하고 집에 있는 걸 힘들어하는 게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됐던 것 같아요. 책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자녀의 욕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여기에는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요구뿐만 아니라, 보이고 들리고 이해받길 원하는 정서적 욕구 또한 포함된다.”

부모에게 나의 이야기가 들리고 내 감정을 알아주길 바랐는데, 그 마음이 수용된 적이 별로 없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게 내 외로움의 시작이구나. 

소담   그럴 수 있겠네요. 저는 그 나이대 그런 생각 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저도 부모님이 맞벌이하시고 밑으로 동생 2명 있거든요. 저희 엄마, 아빠는 자영업을 하셔서 거의 밤에 오셨거든요. 저희 셋이 집에 있는 시간이 되게 많았고 막내 동생은 저랑 8살 차이가 나는데 맨날 엄마, 아빠 언제 오냐고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그래서 맨날 저한테 맞고 그만 좀 울라고. 그래서 정서적인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이 초코파이 한 상자 가지고 서로 먹겠다고 싸우면서 커가지고 외로운 기억 자체가 없어요. 무수님은 어렸을 때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수   그때는 정확히 그 감정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고 상담도 받고 계속 나를 바라보면서 언어화를 시킨 거고 그 당시에는 모른 채로 오랜 시간 있어서 상처가 깊어졌나, 그런 생각을 해요.

소담   근데 가까운 가족 관계에서 친한 건 진짜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 보면 되게 부럽고 신기해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요. 가족이 화목해야 된다는 건 뭔가 주입받은 거 같아요. 가족은 서로 사랑해야 하고 행복해야 하고…이건 굉장히 환상이고 그러기 쉽지 않잖아요.

무수   어려워요. 그게 저도 환상이라는 걸 알지만 주입됐기에 부모와 거리 두고 싶어 하는 저를 보면 죄책감을 느껴요.

소담   효도해야 될 거 같고...잘 지내면 물론 좋겠죠. 인생에 안정감도 있고. 그게 쉽지 않으니까 문제지.

무수   혐오는 영화 속에서 게이가 사랑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 시기였잖아요. 자일스가 게이였는데, 그가 파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려고 자주 찾아가고 살짝 손을 잡으니까 뭐 하는 짓이냐고 돌변하고, 가게에 흑인 손님이 오니까 자리 있는데도 나가라고 말했잖아요.

소담   저도 그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자일스는 과거엔 어떤 기업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카메라가 나오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니 해고된 것 같았어요. 본인은 회사로 복귀하고 싶지만 받아주지 않고 꺼리잖아요. 시대가 변할 때,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AI 시대가 된다고 했을 때 그 기술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낙오자가 되거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될 수도 있겠죠.

무수   이미 사회에서 노인들이 키오스크를 잘 못 쓰고 어려워서 차별을 겪잖아. 

소담   맞아요. 우리 사회에는 노인 혐오가 있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될 거잖아요. 그게 되게 모순인 거 같아요. 우리는 결국 나이가 들 건데 나이 든 사람을 혐오한다는 것이.

무수   어린이였는데 어린이인 사람들도 혐오하고 노키즈존 만들고…

소담   그 얘기만 해도 1시간은 이야기할 수 있는데. 최근에 어떤 커플이 결혼식장을 노키즈존을 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왜냐하면 결혼식은 조용히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니까 라는 이유였던 것 같아요.  그 논리가 카페에서 노키즈존 하는 거랑 굉장히 동일한 거잖아요. ‘카페는 노키즈존 하잖아. 근데 결혼식장은 왜 안 돼? 나는 결혼식을 엄숙하게 하고 싶어’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어떤 혐오나 차별이 용인되게 되면 더 큰 혐오와 차별이 될 가능성이 높겠죠.

무수   그렇죠. 실제로 노 차이니즈 존을 만든 성수동 카페가 있었잖아요. 그걸 시민들이 인권위에 진정 넣어서 인권위가 사업주를 설득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 표시는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진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실제로 봐서 충격이었죠.

소담   제가 만약에 런던의 어떤 식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거기에 한국인 출입 금지 이렇게 써있으면…저는 유럽을 좋아해서 가끔 여행을 가는데 어쩔 수 없이 '유랑'이라는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서 정보를 찾거든요. 그곳엔 굉장히 많은 글이 유럽에서 인종 차별 당한 이야기예요. 어떤 카페에서 인종 차별 당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저기 가지 말아야겠다고 체크하고, 인종 차별이 심하다고 알려진 도시엔 가기를 꺼려 하더라고요. 근데 순간 웃긴 거예요.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외국인과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다루고 있고 어떤 행동하고 있는가 보면 ‘나는 인종차별 절대 받으면 안 되는데 내가 인종 차별하는 건 가능해’ 라고 생각하는거죠. 저도 그럴 수 있겠죠.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무수   그게 참 모순인 것 같아요. 영화에서 사랑의 순간도 많았는데...보면서 놀란 건 어인이 자일스의 반려 고양이를 먹어버리잖아요. 근데 자일스가 화를 안 내는 거예요. ‘그건 걔 잘못이 아니지. 걔는 야생 동물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는데 너무 사랑이라 느꼈어요.

소담   거기서 사랑을 느꼈다고요?

무수   자일즈가 어인을 생각하고, 친구인 엘라이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인 거예요. 화내지 않고. 

소담   그건 불가능해. 왜냐하면 우리 집 고양이 까망이 봤잖아요. 예를 들면 멧돼지가 와서 우리 까망이 먹었다? 근데 제가 ‘멧돼지는 야생동물이니까’ 그럴 수 있을까? 저는 오열하고 뒤집어지고 난리나지.

무수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모습이 너무나 사랑이 아닌가.

소담   그럼 고양이는 안 사랑했어요?

무수   소담님은 반려인으로 너무 화나겠네요. 

소담   그래도 그 장면은 괜찮았던 게 너무 CG인 게 티가 나는 거예요. 저는 대체로 동물 괴롭히는 장면이나 동물을 활용하는 영화를 보는 게 마음이 불편해요. 저게 CG일까, 아닐까? 계속 보게 되고. 저건 동물을 진짜 괴롭혔을까? 정말 죽였을까? 계속 생각하게 돼요. 제가 생각한 사랑의 장면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벼운 사랑을 이야기해 보자면 엘라이자가 주상복합에 사는데 1층이 영화관이잖아요. 출근길에 영화관 입구를 지나는데 건물주로 보이는 극장 사장님이 이번에 월세 낼 때 영화 티켓 줄 테니까 영화 보러 오라고 하면서 엘라이자에게 잘해주더라고요. 뭔가 따뜻한 사랑의 느낌이었어요.

무수   맞아. 엘라이자의 동료로 나오는 젤다도 너무 사랑이죠. 엘라이자가 출근을 늦게 할 때마다 새치기로 끼워주고 다른 사람들이 욕해도 무시하고. 영화 말미에 연구소 이끄는 리처드가 어인을 찾으려고 협박해도 절대 모른다고 얘기 안하잖아요. 근데 옆에 이상한 남편이 말해서…배우자한테도 정말 단호하게 화내면서 엘라이자에게 전화해서 도망치라고 알려주는게 사랑이었어요. 그리고 자일스도 엘라이자를 이해는 못하지만 어인을 구출할 때 할 일 있으면 말하라고 하면서 도와주는 거 너무 사랑이야. 그리고 처음에 엘라이자가 어인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곳에선 괴생명체라고 가뒤지고 그랬는데 그 존재에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면서 손짓하는, 낯선 존재에 대해서 환대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소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님이 크리처를 사랑하는 감독님이에요. 감독님은 우리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크리처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관심을 가진 분이잖아요. 그분 집에 가면 엄청나게 많은 크리처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걸 만드는 게 그분의 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분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외모나 겉모습을 가진 존재들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을까, 이 사람한테는 그게 너무나 애정의 대상이고 관심의 대상이지 않을까, 우리랑 보는 눈이 아예 다른가,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영화에서 엘라이자가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긴 존재를 봐도 편견 없이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무수   그게 제가 닮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낯선 이를 환대하는 마음. 근데 어렵잖아요. 그래서 영화에서 엘라이자와 어인이 사랑을 하는 게 끝 단계 같다고 느껴져요. 사실은 우리가 다 열망하는 사랑이잖아요.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걸 구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내가 엘라이자라면 그럴 수 있나?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관심은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존재로서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데, 어떤 관계가 되는 건 또 다르잖아요. 그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소담님은 어인을 사랑할 수 있나요?

소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무슨 사랑은커녕, 친구가 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일단 말이 안 통하는데…어? 그러고 보니까 난 까망이랑 사랑하는데 말 안 통해도 가능하네?

무수   가능해? 갑자기? 

소담   제가 까망이를 처음 만났을 때 진짜 혐오했거든요.

무수   까망이를?

소담   네. 동물을 안 좋아했어요. 13년 전이죠. 저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어요. 제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 동생이 가족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냥 길에서 까망이를 납치해 왔단 말이에요. 그때 밤에 퇴근하고 방문을 열었는데 캄캄한 가운데 노란색 눈빛 2개가 저를 쳐다보는데 너무 깜짝 놀라서 하고 아아악! 소리를 질렀어요. 제가 소리를 지르니까 아빠가 제 동생이 고양이를 데려왔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진짜 난리를 쳤죠. 나는 동물이랑 같이 못 산다. 빨리 내쫓아라. 그때 저는 어떤 사람이었냐면 반려동물 키울 돈 있으면은 사람을 도와야지, 지금 이렇게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동물한테 돈을 그렇게 쓰고 병원 데려가고 그렇게 할 수가 있어,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에요. 근데 동생이 까망이를 데려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거예요.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요. 제가 식탁에서 밥을 먹는데 바닥에 까망이 밥그릇이 있고 까망이는 네발로 서서 밥그릇에 코를 박고 밥을 먹는 거예요. 괴생명체 보는 것처럼 뭔가 불결하고 ‘동물이라니’ 약간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게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간처럼 숟가락으로 밥을 먹어야지, 그릇에 코를 박고 밥을 먹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너무 사랑하는 존재가 된 거죠. 그래서 제가 부모님과 헤어져서 혼자 살게 되었을 때 까망이를 제가 데리고 오게 된 거죠. 이게 진짜 좋은 예인 게 아까 그 얘기했잖아요. 우리가 어떤 존재한테 혐오감을 가지고 있어도 그건 일시적인 것이고 같이 지내다 보면 없어진다고. 그게 저한테 딱 까망이에요. 너무 혐오스러웠는데 지금 없어요. 까망이 없으면 못 살아요. 까망이는 한 30년 더 살아야 해요. 

무수   그렇게 혐오했는데 주 양육자로 데리고 와서 지금까지 살고. 그러면 나는 까망이를 사랑하니까 어인도 사랑할 수 있다?

소담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 가능할 것 같아요.

무수   저도 그런 걸 느낀 적이 있어요. 저희 동네에 길고양이 되게 많거든요. 밤에 집으로 들어가면 약간 지친 마음이나 공허함이 있는데 날씨가 괜찮으면 밖을 서성여요. 그러면 고양이가 저를 알아보고 와줄 때가 있어요. 여기 주민들이 밥도 잘 챙겨줘서 애들이 살가운 편이에요. 제가 앉아 있으면 엉덩이 붙이고 옆에 같이 앉아요. 서로 얘기는 안 하지. 근데 뭔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아요. 내 마음 아는구나. 몸이 붙어 있는 느낌이 진짜 위로가 되더라고.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게 엄청 큰 힘이라는 걸 길고양이를 통해서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게 힘든 일을 겪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어려울 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잖아요. 그럴 때는 진짜 내 몸으로 옆에 있어주는 거. 그게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해보고 싶어요. 활동할 때 현장 집회 가는 것도 사실은 몸으로 하는 위로라고 생각이 들어요.

소담   역시 고양이가 최고다.

무수   그러니까. 우리 거의 2시간 가까이 길게 얘기 나눴는데 어땠나요?

소담   지금까지 둥그런 옆자리를 보았을 때는 무수님이랑 좀 가까운 사람들이 같이 얘기하는 것 같았거든요. 저랑은 세 번째 만난 사이잖아요. 저도 무수님을 잘 모르고 궁금했던 존재인데 이렇게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제가 독서모임에 초대를 했고 이번에는 무수님이 저를 초대하신 거잖아요. 덕분에 너무 재밌는 대화 나눠서 좋았어요. 그리고 무수님에 대해서 더 알게 된 것도 좋았고 또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다시 만나기 힘든데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무수   저도 비슷한 마음이에요. 저는 소담님을 인스타그램으로 오래 봐서 이제야 만났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만나고 그 이후에 독서모임 초대를 거듭해준 것도 너무 감사했어요. 저도 소담님이 되게 궁금했거든요. 이 사람 뭔데? 이런 활동을 계속하고 나한테 좋은 사람들도 추천해주고 마음 써주나? 그게 고맙고 뭔가 이어지고 싶어서 초대했어요. 오늘 얘기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알게 돼서 좋아요. 저는 소담님 집도 가봤잖아요. 까망이도 만났고. 근데 까망이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들으니까 소담님의 복합적인 면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 

소담   저는 정말 쓰레기 같은 사람이에요.

무수   저도 쓰레기예요. 얘기해요? 저 보통 아닌데…

소담   그래서 인스타그램으로 저를 알게 되신 분들이 실제로 만났을 때 너무 실망하실 것 같아서 두려워요.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내가 너무 착한 사람일까 봐.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무수   SNS 하면 다 그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인간의 재미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은 다채로우니까. 그래서 두렵다기보다는 더 마주하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아마 소담님을 만나는 사람들도 여러 면을 다 긍정적으로 느낄거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소담   다행입니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