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과 돈을 오가는 당신에게

어느 평일 저녁,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던 길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습니다. 위잉– 위이잉– 다급한 소리는 제 발걸음을 멈추게 했어요. 돌아보니 구급차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신호등이 바뀌자 사람들은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구급차를 바라보는 제 시선과 구급차를 의식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습니다. 멈추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차가 비켜주지 않을거라 체념을 하며. 한 사람의 위급함과 한 사람의 무탈한 일상이 같은 공간에서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장면은 우리 일상에서 낯설지 않습니다. 특히 노동하는 곳에서요. 

요즘 계속 떠오르는 질문은 ‘왜 일하다 죽게 되는가’. 최근의 사건만 떠올려도 많아요. 연일 사람들이 줄 서던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노동자가 죽었고, 도시 골목마다 있는 파리바게트 SPC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죽고, 쿠팡 택배 노동자가 죽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강압적인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 죽었습니다. 울산 화력발전소가 붕괴해 6명이 죽고 지금도 한 명이 매몰된 상태입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줄을 서서 빵을 삽니다. 누군가는 새벽택배로 필요한 물건을 편리하게 받습니다. 누군가는 사건 기사를 넘겨보며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어떤 순간엔 그 누군가가 저였고, 또 어떤 순간에 당신이었을 겁니다. 살려고 한 일 때문에 죽는 일을 마주할 때마다 정말 ‘일’은 무엇이며 ‘돈’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저는 프리랜서로 여러 일을 하지만, 주로 강사로 일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핵심적인 일을 찾아 포트폴리오 만들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제 5년차 강사가 되었는데요. 일을 하며 가장 자주 마주치는 감정은 ‘불안정함’입니다. 협업 제안 메일을 받으면 자주 페이가 적혀있지 않아요. 그때마다 저는 조심스럽게 페이를 묻고 또 다시 적당한 시기를 고르며 페이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 일을 수년 동안 반복해왔습니다. 자신이 얼마를 받는지 모르고, 언제 받는지 모르고 일하는 직장인이 있나요? 그런데 프리랜서에겐 자주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또 문제는 강사 경력이 쌓여도 페이가 오르지 않아요. 강사 페이는 주로 지자체 인재개발원에서 제공된 강사 수당에 묶여있습니다. 페이를 상향조정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면 꼭 이 자료를 가지고 어렵다고 답합니다. 크게 7단계로, 5급부터 특1급까지 나누고 있는데 1급엔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전직 4급 이상 공무원, 유명 인사, 변호사 등 전문자격증 가진 자, 국가대표. 이 기준으로 보자면 포트폴리오 강사 일을 성실히 10년을 해도 저는 1급이 될 수 없죠. 이런 등급표를 보자면 강사로서의 기술보다는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얼마나 명예가 있고 유명한지가 중요한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재개발원의 자료는 강사에게 최소한 이정도의 돈을 줘야한다는 최저선의 기준을 잡기 위해 만들어졌을거라 추측하지만, 이는 노동자에게 최소이자 최대가 됩니다.

최근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참여자가 저조한 경우 취소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면 페이도 없다고요. 그동안 기획하고 운영 준비를 다 해두었는데 참 황당하죠. 그래서 화나는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취소될 경우 기획과 준비에 대한 일부 보상이 가능한지 살펴달라고요. 그런 건 없고 대신 취소되지 않게 홍보를 열심히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담당자님에게 화내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프리랜서면, 강사면 그들의 노동을 이렇게 이용해도 된다고 짜놓은 판, 구조에 화가 납니다. 조직 밖에서 일하면 모든 노동자의 기본값이 직장인으로 설정되어있다는 걸 자주 느끼곤 합니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노동자는 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사회에서 직장을 다니라고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이기도 하죠. 근데 또 직장을 다닌다고 좋은가요. 장시간 노동, 위험한 환경, 일상적인 스트레스, 번아웃. 그러면 어디로 가야하나 생각하다 어떤 날은 차라리 일을 안하는 게 나은 선택이라 여길 때가 있습니다. 일을 쉬는 청년이 많은 건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혐오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저는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자신이 자신으로 살기 힘들어지는 문제’. 여기에 덧붙여 타인의 고통에 외면하며 생기는 사회적인 감정이 혐오 라고 여깁니다. ‘그건 너의 일, 누가 그런 데서 일하래?’ 도망갈 곳도 나아질 길도 막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 그곳에서 혐오를 봅니다. 어떤 노동을 해도 죽지 않아야 하고, 노동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은가요. 

다시 멀리서 들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차는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길을 내주고, 거리의 사람들은 파란불이어도 잠시 멈춰 구급차가 먼저 지나가게 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의 갈길을 가도 늦지 않습니다. 그 위급한 일이 일해서 죽는 일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노동해서 죽으면 안된다고 외치기, 노동하지 않거나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소득 요구하기, 피가 묻은 빵은 사지 않기, 노동환경에서의 불합리함을 말하기, 어쩔 수 없다는 체념 대신 다르게 해보자고 대안을 상상하기.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할일이 분명 있을거예요. 구급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그 잠깐의 멈춤처럼 말이죠. 저는 한 명의 노동자로 계속 시도할 예정입니다. 정해진 길에 맞춰 올라가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삶은 한가지 모양이 아니라는 말을 되뇌이며.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잘 살려고 애써볼 겁니다. 손으로 찰흙을 빚듯, 오밀조밀 다채로운 모양을 만들어 펼쳐보려 합니다.

2025년 11월 14일

☘️ 일과 돈을 오가는 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