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  책 마지막에 다정하고 용기 있는 어른이 나의 장래 희망이라고 말하잖아. 이 사람이 50대인데 장래 희망을 얘기해서 좋아. 어른이 되면 장래 희망을 묻지 않잖아. 우리가 죽을 때까지 무슨 일 하고 살지, 어디에서 살지, 누구랑 살지를 계속 고민하는 과정인데 그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으니까. 본인의 장래 희망 말하는 게 재밌어서 질문으로 써봤어.

무수   친절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잖아. 자리를 비켜주는 것, 인사를 하는 것도 목소리를 내야 되고 되게 용기가 필요한 거야. 그 용기를 기꺼이 내서 친절을 나누는 거지. 그런 지점에서 나도 친절하고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 근데 요즘에는 어른이 될수록 자기 고집이 세지니까 세대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거 같거든. 어떻게 하면 서로 동등한 시민으로서 소통할 수 있을까 그걸 모르겠더라고. 근데 우리 요가원에 그런 분이 있어. 자식이 대학생이고 그 위로 더 나이가 있는 자녀도 있으니 우리 엄마 세대와 가까운 사람인데 같이 어울리기가 편한 거야.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성실하게 열심히 요가 수련도 하시거든. 그런데 뭔가 으스대는 것도 없고 또 많이 나눠줘. 요가원에서 다과회나 야외 요가 이후 소풍을 하면 먹거리를 바리바리 챙겨와 나눠주시면서 생색도 내지 않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한테 골고루 주는 마음이 느껴져. 그래서 그분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지? 생각했어.

연화   나눔에 인색하지 않은 건 진짜 어려운 일인 것 같아. 의욕적으로 나눠주고 나서 후회할 때도 있고 진이 빠질 때가 많아. 그 이유 중 가장 큰 건 나의 소진이 너무 커서.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는데 안 해본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누는 일이 지치고 어색할 때 스스로에게 아쉽다고 느껴.

무수   연화는 어떤 장래 희망이 있나?

연화   건강하게 잘 죽었으면 좋겠어. 구술생애사 최현숙 선생님이 쓴 책에서 잘 죽을 수 있는 몸이 있다고, 돌봄 받을 몸까지도 준비해야 하는 거 같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내가 수치스럽지 않게 죽으려면 최소한의 근육이 뭔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 내가 한동안 목이 너무 아팠고 지금도 목감기로 아파서 잘 챙겨야겠다 싶어. 그리고 장래 희망은 내가 40~50대엔 이주를 안 했으면 좋겠어. 내가 제일 오래 살았던 본가의 집은 임대를 주긴 했지만, 존재는 해. 내 고향 같은 곳인데 그곳을 정리하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그러면 집에 대한 기억도, 고향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겠다 싶어. 재개발 관련한 책과 전시도 많은데 그게 물리적 기록의 퇴화가 아니라 정서적인 연결성을 빼앗겨버린 기분일 것 같거든. 나이 들었을 때 외롭지 않으려면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어. 고향이 주어진 곳이 아니어도 한 곳에서 오래 살아서 지역 사회에 나름의 동료 시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

무수   지금은 서울 은평에 살잖아. 그곳은 고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은평에 좀 오래 살았지?

연화   이제 5년 차. 내가 지난달 내내 목요일마다 지역 아카이브 프로그램을 들었어. 은평에선 되게 오랫동안 여러 단체에서 지역 아카이빙하는 프로그램을 계속하거든. 그래서 보고 있었다가 도서관에서 하길래 신청했는데, 두 가지 마음이 있어. 참여자가 나 빼고 50~60대고 여성이 80% 정도.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집을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내가 생각했던 수업이 아닌 거야. AI 사용법을 알려주고 노트 기록 전환하고 양식에 맞춰서 작성하는 법을 안내하더라고. 흐름이 있는 건 알겠는데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더라고. 동시에 어른들이 또 예뻐라 하시고 글을 자꾸 쓰라고 하는데 그게 무급 노동이거든. 이제서야 아무리 서울이어도 지역사회에는 청년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무수   무급 노동이라면 무급 노동인데 관점을 달리해서 활동이라고 하면 활동인 거야. 근데 활동은 진짜 무급 노동이거든 거의.

연화   이건 주민자치 활동인데, 나도 활동하는 친구들 많지만, 주민자치를 활동하지 않아. 보통은 다른 미션이나 주제를 가지고 활동하지. 근데 우리 지역에 대해 활동을 한다는 게 우리 세대에게는 별로 없는 개념인 거야. 그것에 대한 갭… 그래서 골머리야. 내 장래 희망이긴 하지만.

무수   우리가 지역 활동으론 이야기가 많이 없다 보니까. 특히 도시에 살아서 그렇고.

무수   작가님이 이전에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분으로 알고 있었어. 이 책 서문을 읽었을 때도 어린이를 중심에 두되 어린이와 잘 지내는 좋은 어른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고 생각했어. 좋은 어른이 성취를 이뤄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우러지고 친절함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라고 이해했어. 그리고 저자도 어떤 어른이라고 했을 때 계속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무언가를 해보는 사람, 못했을 때 부끄러움도 아는 사람이라서 좋더라고. 어떤 어른은 이런 사람을 표현한 거 아닐까?

연화   챕터가 지날수록 주체가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어. 어린이에서부터 청소년 그리고 어른으로. 마지막엔 ‘어른에게 어떤 어른이 필요할까’라고 했던 게 좋았어. 서문에 보면 ‘어린이는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어린이를 존중하자고 말할 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존중하자는 말도 하고 있었다’ 이 말도 너무 좋았거든.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라 좋은 제목이라 느꼈어.

무수   나는 그 위에 문장에 밑줄을 쳤어. ‘나 자신의 지난날을 헤아리면서 어린이였던, 청소년이었던, 어른이었던 날들 내내 나는 나였다는 걸 알았다. 살아가는 한 인생의 어느 부분도 단절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한테 하는 행동이 어린 나한테 하는 행동 같아서, 어렸을 때 내가 받고 싶었던 걸 해주는 것 같더라고. 

연화   그런 대목도 되게 많이 나오지. 구체적으로는 작가 본인의 얘기를 하지 않지만, 자신도 어렸을 때 힘들었던 가정 환경 안에서 많이 상처받았고 그때 필요했던 어른들이 종종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해.

무수   최근에 만났던 어린이 중에 기억나는 친구가 있어? 그 어린이한테 내가 어떤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는지 궁금해.

연화   최근에 가장 임팩트가 있었던 친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의 생일 축하 카드는 전해준 어린이. 인사를 했는데 “저 생일이었어요” 하고 자신이 만든 카드는 주더라고. 열어보니 ‘누구누구 생일 축하합니다’와 케이크 모양으로 스티커 붙여져 있었어. 굉장히 자랑스러워해서, 그 친구의 당당함에 놀랐고 멋있었어. 그래도 제일 가까운 어린이들은 조카들이긴 한데 모르겠어. 조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친구가 5살인데 아직 상호작용이 활발하지 않아서 돌본다는 느낌이 더 큰 것 같아.

무수   근데 돌보는 것도 좋은 어른이잖아. 그걸 해주려고 하는 거 아니야?

연화   부모님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 할머니, 할아버지로 사는 것도 참 어렵구나.

무수   어렵지. 다 받아줘야 하고… 그 친구들과 지내며 이건 내가 좋은 어른이었다고 느낀 순간이 있어?

연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애들이 더 커서 한 초등학교 1~2학년 되면 우리 집에서 방학 때 캠프 같은 걸 열어줄까 싶어. 다 모이면 5명으로 북적북적하니까 같이 지내면서 수영장도 데리고 가고 박물관도 가고.

무수   여름방학 때 이모네 캠프 가는거야? 좋다! 나는 최근에 만났던 어린이가 지난 주말에 계곡에서 만난 어린이였어. 우리끼리 놀고 있었는데 자꾸 눈이 마주쳤어. ‘이름이 뭐예요’, ‘어디서 왔어요’ 이렇게 물으며 같이 놀았지. 8살 여자 어린이였고 이름은 서영이었어. 경북 구미에서 왔대. 아빠랑 삼촌이랑 할아버지랑 놀러왔고 엄마는 한 살인 동생이 있어서 아기를 돌보느라고 못 온 거 같아. 친해지니까 아빠 흉도 나한테 말하는거야. 저기 낚시하는 사람이 아빠인데 낚시를 못한다며. 그 어린이랑 이야기하면서 존댓말을 쓰려고 신경 쓴 것이 기억이 나. 그래도 반말이 툭툭 나가긴 했지만...그리고 그 계곡에 물살이들이 있어서 어린이들이 그걸 잡거나 어른들도 낚시를 했는데 서영이가 아빠가 잡은 걸 나한테 보여주면서 죽은거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니야 아직 안 죽었어. 지금 팔딱거리잖아. 물에 들어가면 다시 살텐데 놔줄까요?’ 하니까 풀어주었고 같이 살아나는 걸 봤지. 곤충이나 물살이를 함부로 대할 때 내가 ‘벌레도 물살이도 서영이도 다 친구지’ 이야기 해줬어. 기억이 안 날 수 있지만 이런 어른도 있다는 걸 보여준 순간 아닌가 싶어.

연화   처음 이사 간 집은 도보 한 15분 거리에 이웃이 있었어. 앞집도 이사 와서 마카롱을 주시고 아래층 아주머니는 떡볶이를 해주었지. 대신 그분이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걸 도와주었지. 그래서 음식은 고맙지만 부담스러워서 피해 다녔어.

무수   근데 어떻게? 갑자기 ‘해주세요’ 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연화   한 60대 중반쯤 되는 어르신이었는데, 똑똑 - 이사 왔냐며 인사를 나누다가 내일 시간 있냐고 떡볶이 먹으라고 하면서 도와주게 되었지. 그리고 유난히 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쫓아와서 인사하던 아랫집 이웃도 있었어. ‘아가씨 어디 가요?’ 언제나 물어보셨어. 인생 선배님들에게 적극적인 나눔을 받았지. 

무수   우리 동네도 어르신들 많은데 딱히 인사하는 분은 없네. 우리 층에도 한 8세대 사는데 서로 몰라. 그러다가 최근 옆집 이웃과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여기 엘리베이터가 오래돼서 가끔 문이 안 닫힐 때가 있는데 이웃이 혼잣말로 ‘이게 또 이러네’ 하셔서 내가 옆에서 ‘가끔씩 그러더라고요’ 하면서 인사를 나누게 됐었어. 근데 갑자기 그분이 자신의 집이 시끄럽냐는거야. 내가 ‘어디신데요?’ 물으니 우리 옆집이더라고. 난 여기서 5년 넘게 살았는데 그분은 날 아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지. 이웃과 같이 사는 남자 어르신이 있는데 가끔 그 목소리가 넘어올 때가 있었거든. 그게 시끄러울까 봐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내가 여기 벽이 얇아서 방음이 잘 안되는 거 같다고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분이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런거라고 자기가 얘기를 하겠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얘기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인사를 나눴지. 근데 사실 신경이 쓰였는데 귀가 안 들리셨다고 하니까 이해가 되더라고. 그분이 나한테 거의 유일한 이웃인데 그런 이웃이 조금만 더 생기면 이곳에 사는 게 더 편안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연화   나도 편한 이웃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내 생활 패턴이 뒤죽박죽이라서. 사람이 여럿이라 누가 빠져도 모임이 계속 이어지면 좋을 텐데 생각보다 인생의 여력이 없다. 나름의 흐름이 있고 거기서 엮여가는 사람들이 만들어져야 편안한데, 나한테 호의를 준다고 해서 내가 편안하지 않아.

무수   책에서도 친구는 사적 관계인데 이웃은 공적 관계, 사회적인 관계라고 하면서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가 있는 게 이웃이라는 얘기를 하더라고. 사실은 우리가 이웃을 친구로 만들려고 해서 어려운가 라는 생각도 들었어. 친구가 이웃이 되거나 이웃이 친구로 되면 좋겠는데 사실은 또 다른 관계일 수 있잖아. 친구는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이라면 이웃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니까. 

연화   이웃과 서로 밥을 해주고 나누는 건 되게 보람된 일 같은데 컴퓨터 오래 보며 노동하고 나면 여유 있게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여력이 없어서 하기가 어려워. 매일 먹어야 하는 밥도 말이야.

무수   이웃은 시간이 더 많이 쌓여야 하는거 같은데, 도시 안에서는 교류할 기회도 없고 이사도 많이 다니니까 그냥 같은 건물에 사는 거지. 쌓이는 시간이 전혀 없잖아. 그래서 내가 요가원이라도 동네로 다니고 싶었는데 그래야 이웃이 생기니까. 근데 동네 요가원이 내가 안 맞는 거야. 그래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가는데, 그곳은 요가원을 중심으로 이웃들이 친해져서 되게 좋아 보이더라고. 다음에 내가 이사를 한다면 좋은 요가원이 있는 동네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연화   어떤 분은 빵집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더라고. 매일 식사 빵을 사는데 그러면 상점 주인이랑 친해지면서 그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동네 사람들이랑 교류한다고 해서 그것도 방법이겠다 싶었어.

무수   작가님이 책 <어린이라는 세계>을 내고 알려져서 차별금지법을 위해 단식 투쟁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가는 이야기가 있었잖아. 이분도 마음은 크지만 적극적으로 현장에 가보지 못한 분이니까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 기대했던 것 같아.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뭘 해야 하지 고민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사람이 없어서 실망했지. 그리곤 다시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들 덕분이고 이게 다 민주주의며 과정인데 실망하는 게 자신이 건방지다고 얘기를 하거든. 활동하면서 시민으로 살면서 그런 순간이 있기도 하니까, 연화에게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해.

연화   사실 작년에 모어데즈에서 라이츠 모임을 열었는데 겨우 사람을 모았잖아. 그때가 비슷한 감각이 아니었나 싶어. 잔뜩 기대를 하고 나름대로 모객도 하고 광고도 돌리고 기자님도 오시고 했는데 쉽지 않았잖아. 그래도 그 과정이나 결과물 자체는 너무 뜻깊었어. 그때 참여자분이 나눠주셨던 소감이 되게 좋았거든. 이 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되게 좋았어. 동시에 나는 메시지가 먼저인 프로그램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 이걸 어떻게 사람들이 소화할지 고민되더라고. 그렇지 않은 자리도 사람들이 안 모이는데… 그리고 너무 많은 서명을 해야 할 때도 환멸을 느껴져. 서명도 참여의 일환이지만, 서명을 엄청해도 세상은 안 바뀌는 거 같으니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무수   그럴 수 있지. 나도 모어데즈로 라이츠 모임 만들면서 초반에는 그런 생각이 있긴 했었어. 중요하고 좋은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도 이게 설득이 잘 안될 때 막막하고 실망감이 들었는데 이걸 여러 번 하니까 그냥 자연스러운 거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어.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계속 자리를 만들고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걸 지속하고 싶더라고. 요즘에는 기본소득 시민단체인 BIYN 단체에서 운영지원팀 일을 하니까 단체에 소속돼서 느끼는 것이 있어. 회원들이 적지만 있는데 이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기본소득에 관심이 있어서 후원까지 한 사람조차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지? 더 어렵더라고. 오히려 라이츠는 활동의 기반이 없어도 가볍게 올 수 있게 허들을 낮춘 건데, 관심이 있는데도 시간을 내기가 계속 어려워지는 이 상황들이…구조적인 문제도 분명히 있지만 개인이 어떤 의지를 내는 것도 필요하잖아. 후원도 활동이지만 후원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데 그게 잘 안될 때 어렵더라고.

연화   난 동시에 그런 것도 있어. 내가 시위에 대해 굉장히 체념하고 있다고 많이 느꼈는데 작년에 BIYN에서 같이 기후정의행진 갔을 때 그 현장의 에너지가 좋아서 신기했어. 예전에 단체에서 일하면서 시위를 백업해 주는 활동도 했거든. 개발 반대 시위, 맹꽁이 단지 지키는 집회 등을 했는데 무력감이 있었어. 정말 사람이 적은데 맨날 오는 사람만 오는 거야. 마이크를 쥐고 이야기할 사람도 이미 정해져 있어서 나는 진짜로 서 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서 ‘내 자리가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어. 내가 감응하지 않는데 거기 서 있어 봤자 무기력한 느낌이 되게 크니까.

무수   시민단체나 좋은 가치로 활동하는 조직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오히려 나는 그런 조직에 일한 적은 없고 BIYN은 되게 느슨한 곳이잖아. 내가 동원되는 느낌은 나도 싫거든. 그렇지 않은 환경에 가다 보니까 나는 주로 큰 집회에 갔었고 단체에서 가더라도 원해서 하는 것이 훨씬 많았어. 근데 집회 자리마다 차이가 있는 거 같아. 특히 페미니즘 집회를 갈 땐 즐거운 마음보다는 결사적인 마음이 되기도 하고 페미니즘 집회에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러니까 경계심이나 두려움도 생기지. 근데 퀴어퍼레이드나 기후정의행진을 갈 때는 전혀 그런 마음이 아니거든.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분위기도 축제 같은 느낌이고 집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 근데 페미니즘 집회는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참여자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분리되는 느낌이 있어. 왜 페미니즘 운동은 무겁고 어렵게 풀리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성평등과 페미니즘도 축제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얘기할 수 없나.

연화   첨예해야 하는 건 맞는데 아무도 환대할 수 없게 의심하는 기제가 오래전부터 있는 것 같아. 실제로 시위 협박도 많고 극우 세력들이 특히 페미니즘 얘기만 하면 난리니까.

무수   근데 퀴퍼에도 되게 많거든. 거룩한 장벽 이러면서 퀴어 혐오 세력이 늘 같이 있어. 우리 행진하는 거리에도 되게 많은데 그들이 불신지옥, 예수를 외치며 혐오할 때 우리도 같이 외치면서 기쁘게 행진한단 말이지. 퀴어라는 말도 처음엔 안 좋게 부르는 말이었는데 당사자들이 좋은 의미로 해석해서 달라진 것이 있잖아. 페미니즘 운동도 그게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어. 다른 사람들도 더 초대하고 말이야.

연화   가부장제의 경직성도 있지만 페미니즘의 경직성도 분명히 있는 거 같아.

무수   책에서 청소년과 소년원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구절이 있어. 

“(책 <소년을 읽다>) 작가는 머리말에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사람이다’라고 썼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제일 힘센 동력이다. 아이들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여기서 나는 멈췄던 것 같아. 사람한테 진짜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게 큰 힘이 된다는 거를 나도 순간순간 느낄 때가 있어서. 실제로 몸으로 느껴지는 건 달리기할 때도 혼자 달리는 것보다 옆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페이스가 좋아지고, 더 달릴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훨씬 더 많이 들거든. 근데 그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게 아니야. 단지 옆에서 같이 뛰고 있는 것뿐이야. 그래서 운동할 때 페이스 메이커, 코치, 동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

연화   나는 ‘17살이면 어린 거 아니야 네가 내 인생 내가 살면 되는 거지.’ 이 말이 너무 좋았어. 청소년 대해 하는 문장들이 다 좋았어. 아까 차별금지법 시위 이야기도 눈물이 났었고 민식이법 부분도 화났어. 

“아니 진짜 확 튀어나왔다니까요? 뻔히 보면서요? 이거는 완전히 ‘민식이법 놀이’죠. 제가 블랙박스도 있어요. 그럴 때도 어른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저는 ‘민식이법 놀이’라는 명명 자체가 문제라고 봐요. 민식이는 희생자인데 거기에 이름을 붙여서 어린이를 폄하하는 말을 만들다니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사고가 났을 때 가중 처벌하는 것이잖아요. 아무튼 선생님은 규칙을 지키셔서 사고를 막으셨네요. 잘하셨어요!”

그 사람은 대놓고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잖아. 마이크는 어떤 권위인데 그 장소에서, 사람을 정말 부정하는 느낌이 들 거 같은거야. 주변에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강의가 이어지거나 질문자가 발언할 때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 그리고 노키즈존 이야기도 책에 많이 나오잖아.

무수   진짜 문제야 노키존.

연화   애들도 알잖아. ‘저는 못 들어가요.’ 존재의 부정. 이게 진짜 큰 거 같아.

무수   노키즈존은 어린이를 집단화해서 거부하는 것도 문제지만 어린이와 함께하는 양육자라든지 선생님이라든지 다른 존재까지 다 거부하는 거잖아. 그건 특히 여성혐오와도 관련이 있는 거 같아. 여성 양육자들이 많고 돌봄은 여성들이 많이 하니까. 그 사람들도 같이 배제해도 괜찮다는 무의식이 있나 싶어.

연화   근데 여성 고객이 제일 많기도 하잖아. 그래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어. 카페랑 음식점은 가족 단위로 받지 않아도 영업이 잘되는 건가.

무수   보통 카페들은 어르신도 없지, 어린이도 없지.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젊은 청년들이기 때문에 거의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

연화   나는 이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여기에 ‘어린이와 어른이 만나는 박물관’, ‘어린이와 문화예술 도자기 첫 장면’ 챕터가 있어서 내가 다 좋아하는 내용이라 같이 읽고 싶었어.  

무수   맞아. 박물관도 얘기가 많이 나오잖아. 어린이 박물관을 굳이 나누지 않고 같이 보는 모두의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것에 너무 동의했어.

연화   ‘문화예술 교육은 시민 교육이다’, ‘도자기 찻잔을 꺼내주면은 웬만하면 깨지 않는다’, ‘어린이도 주의력을 기울인다’는 이야기가 좋았어. 크게 보면 나도 문화예술로서 박물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관심이 되게 많지. 그리고 말수가 적은 어린이 이야기도 너무 좋았어. 이건 이 사람만 알 수 있는 부분 같아. 대면해도 보통은 외향적인 아이들이 말을 붙이니까 말이 없는 친구들이랑 대화한다는 건 어떤 걸까 싶었는데 듣는 것이 대화고, 몇 초간 기다려야지 대답이 오는지 살피고 노력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야. 언제나 한 명 한 명으로 잘 대해주려고 하는 느낌도 좋아. 

무수   이렇게 책 <어떤 어른>을 나누며 대화했는데 어땠어?

연화   아픈 와중에도 할 말이 있어서 목을 부여잡고 계속 말했네. 이 책이 좋았는데 못 나누고 넘어가서 아쉬웠거든. 좋은 기회에 이 책으로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

무수   연화가 너무 아픈 상태에 와서 미안하다. 더 편히 나눌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자가 혐오문제를 대하는 모습이 연화의 모습이랑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연결되면서 같이 활동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어.

연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