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영   CBC 창시자인 스승 벤과 이어가는 움직임 운영하는 민정쌤이 떠올라. 벤은 늘 나한테 ‘너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야’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어. 그리고 ‘너는 정말 아름다운 영혼이고 그냥 하기만 하면 된다’, ‘완벽하니까 하산해라’ 라고 얘기했어.

무수   극찬 아닌가요? 스승이 믿어주면 너무 든든할 거 같아. 민정 쌤은?

가영   민정 쌤은 나한테 사람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편한 상태로 만드는 걸 잘한다고 얘기를 했었어. 그게 안 되는 사람도 있대. 요가 선생님 중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스타일이면 사람들한테는 마음 편히 가지라고 말해도 스스로 경직되어 있으니까 못한다는 거지. 근데 나는 잘한다고 하셨어.

무수   들으니까 나한테 좋은 말을 해준 친구들이 떠오른다. ‘나래’라는 친구가 있었거든. 오래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데 내가 섭식장애 당사자 세미나에서 듣고 느낀 걸 나누면서 나는 조금 더 해방감이 든다고 했거든.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으니, 내가 어떤 모양이든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다고. 그러니까 나래가 자신은 당사자 얘기를 듣고 마음이 어려워졌는데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빛을 보는 것 같다고 얘기해 준 것이 기억에 남아. 또 ‘유랑’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대화하고 헤어질 때쯤 유랑이 나와 뭐든 얘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줘서 너무 감동했었어. 마지막으로 ‘혜란’이라는 친구랑 날씨가 좋아서 광화문에서 시청으로 걸어오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혜란이 나를 만난 게 행운이라고 얘기해줬어. 그 말이 나한테 크게 남아서 이후로 그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되었지. 가영이 말하기 전까지 그게 내 장점을 발견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가영이 말한 선생님들 얘기를 들으니까 친구들이 나의 좋은 점을 비춰준 거구나 싶었어.

가영   진짜 되게 좋은 말이다. 무수는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인가 봐.

무수   노력하는데 잘 모르겠어. 판단을 안 하긴 어려운데 요즘엔 하나의 행동이나 말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어.

가영   따뜻한 사람 같아. 그 따뜻함이 전해지면 사람들은 되게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나를 공격하지 않는구나, 판단하지 않는구나,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 나는 따뜻한 사람이 제일 좋거든. 그런 의미에서 슬기를 만난 게 행운이라고 얘기한 게 아닐까.

무수   고맙네. 가영이 다시 해석해 주니까 의미 있다.

가영   나도 하나 생각났는데, 어제 만났던 친구가 나랑 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게 있었대. 그래서 내가 왜 그런 것 같냐고 물어보니까 내 안에 어떤 야생이 있다고 하더라고. 칭찬은 아니고 특성을 얘기한 것 같은데. 자기가 눈치를 많이 보니까 공간 분위기에 자꾸 맞추는데 나와 있으면 자기 안에 야생성이 깨어져서 좀 더 자기 안으로 몰입을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 줬어.

무수   나는 가영이 보면 바다가 생각나. 가영의 움직임이 유려하고 흐름이 끊기지 않는 느낌이라 파도  치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때도 그 사람들을 다 품어주는 큰 바다 같은 느낌. 저마다 어떤 모양으로 둥둥 떠 있던 가영이라는 바다 안에서 되게 자유롭고 따뜻하고 그래.  

가영   고마워. 무수의 시각을 전해줘서. 나 바다 완전 좋아해서 큰 칭찬이야.

가영   내가 보다가 울었었거든. 왜냐하면 움직임과 감정들이 너무 공감되는 거야. 그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어떤 남자가 기쁨을 표현한 것. 그 남자를 시작으로 나중에는 주변 사람들 다 같이 움직이는 장면인데, 그걸 보는데 진짜 행복한 거야. 저 사람에게 춤이 어떤 의미일까 싶고, 삶의 환희 같았어. 삶을 환영하는 모습이었어. 그걸 보면서 울었어. 

무수   ‘봄여름가을겨울’ 이름이 붙은 움직임이 재밌었어. 처음에 한 무용수가 움직이고 줄지어서 사람들이 함께하잖아. 많은 사람이 같은 움직임을 하는데 다다른 자신의 움직임이 담겨 있었어. 그게 나한테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 한 명이 또 한 명한테 영향을 주는 모습에 우리가 이어져 있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어. 모두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움직임을 할 수 있다.

가영   다양성의 느낌이 있다. 그 움직임 자체가. 그렇게 생각 안 해봤는데.

무수   옷도 되게 다양하게 입었어. 여성들은 원피스를 입고 남성들은 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다양한 옷을 입으면서도 같이 있는 모습. 근데 예술적인 관점을 보면 여성성과 남성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불편하더라고. 왜 자꾸 이성애 사랑으로만 표현되는 것 같지? 왜 여성이 계속 전형적인 모습으로만 나오지? 특히 예술을 경험할 때 난 그런 걸 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그게 조금 아쉬웠던 것 같아.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컨택하면서 벌어지는 움직임이 되게 많은데, 특히 한 여성을 두고 남성들이 막 터치하는 움직임이 있었어. 그때 여성 무용수가 표정이 슬퍼졌다가 무기력해졌다가 자포자기한 느낌을 받아서 힘들더라고.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지 고민했어. 어땠어?

가영   그러니까 그거 불편하더라. 이게 다양한 지점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일단은 나는 경험하면 안 되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정확한 맥락이나 상황은 모르지만 어떤 작업물을 남긴다는 관점에서 여성 무용수가 그 배역을 맡았을 때 무엇이든 실험해 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해. 근데 그걸 연습하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서 그 여성 무용수가 수치심이나 불쾌함을 느꼈어. 근데 그 장이 피나 바우쉬가 중심을 잡고 어느 정도의 규칙 속에서 잘 조율했다면 그 경험 안에서 얻어가는 것도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부정적인 경험 속에서 트라우마가 촉발되기도 하는데 그걸 다른 시각으로 해석을 할 수 있거나 새롭게 의미화할 수 있다면 그 트라우마적인 감정이 다른 감정으로 변환이 되고 다른 행동의 원동력으로 변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좀 어려운 것 같아. 

무수   무용수 관점에서는 배움도 있을 테고 안전한 환경일 수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 나는 관객으로서 보니까, 저 장면을 봤을 때 불쾌감이나 어떤 위협감이 느껴지는데 저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물음표가 있는 거지. 근데 그건 이 작품뿐만 아니라 여성을 그려내는 여러 작품 안에서 그런 지점들이 항상 있잖아. 저것만 있는 게 아닐 텐데, 다른 게 없었을까, 뭘 말하고 싶은 거지? 근데 만약에 의도가 있었다면 또 이해할 수 있나? 그것도 모르겠는 거야.

가영   나는 작품을 단순명료한 의도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어. 굉장히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고 그걸 성적인 터치로만 해석하기도 어렵다고 느꼈거든. 왜냐면 성행위나 성적인 상징을 떠올리게 하는 동작은 없었잖아. 어떻게 보면 섹슈얼리티보다는 오히려 굴욕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런 감정이랑 더 연관된다고 느꼈는데,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여자니까 오히려 여성들이 겪는 경험을 섹슈얼한 것뿐 아니라 다른 감정들이랑 연결해서 해석할 여지를 준다고 생각했거든. 또 남성과 여성이 어떤 전형적인 의상을 입고 나왔지만 그건 어떤 걸 상징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단순히 남자들은 이렇고 여자들은 이렇다는게 아니라 상징. 근데 그 상징마저도 우리는 되게 전형적으로 만들곤 하잖아.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지.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상징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데 계속 그 방식으로만 표현한 건 아쉬워. 근데 오히려 전형적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생각도 들었어.

무수   굴욕감 얘기하니까 그 장면이 다르게 읽히는 것 같아. 나 혼자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를 터치를 하고. 근데 그게 사회적인 것과 같이 읽혀버리니까. 나는 바로 성폭력이나 성범죄로 생각이 넘어간 것 같아. 그전에 이 안엔 굴욕감이나 무기력함, 분노, 슬픔 같은 감정이 다 들어있는 거 같다.

가영   가운데 사람을 남자로 바꿔 봤다면, 우리의 해석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궁금해.

무수   오히려 가운데에 있는 여성은 상관이 없는데, 이게 성별이 구분되어 그런거 같아. 누가 봐도 여성성을 가진 사람이 가운데에 있고 그 주변이 다 남성성을 가진 사람으로 나뉘어서 그런거 같아. 근데 주변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을 때는 바로 그렇게 성적인 폭력으로 넘어가지 않고 감정으로 느껴졌을 것 같은데, 이게 바로 젠더로 보이니까.

가영   그거 완전 동의해. 동시에 그렇게 전형적인 젠더 구분을 해버림으로써 사회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전형적인 구분 속에서 가려지는 많은 해석이 있잖아. 전형적인 구분 안에서 멋대로 하는 움직이는 것 같았어. 우리 사회를 반영하면서도 그 무용수의 경험이나 감정으로부터 끌어낸 거기 때문에 다양성이 담긴 거 같아. 근데 여전히 의문이긴 해. 그 무용수가 정말로 저 드레스에 힐을 입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아.

가영   나는 ‘여성성’ 단어에 대해 아직은 좀 더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 근데 여성성의 관념은 나한테 지구의 창조성, 지구의 풍요로움과 연결이 되는 것 같아. 여성이라는 어떤 개체와 연결 짓지 않고 이런 걸 상상하기도 되게 어렵지만, 기본 개념의 원형이 여성에서 나온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있어. 자연스럽게 추동되는 힘으로 창조하는 것, 그런 게 여성성인 것 같아.

무수   새롭다. 여성성은 사회적인 젠더나 혐오문제로 해석하곤 하는데 다르게 이야기하기가 잘 안되더라고. 근데 이런 게 필요한 것 같아. 계속 사회적으로만 얘기하면 우리가 놓치는 게 많을 거 같아. 가끔씩 우리가 여성적이라고 얘기하는 게 조금 낮추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잖아. 당연히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여성이 주로 하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고 여성성이 있을 텐데. 여성적이라고 표현했을 때 낮아지는 느낌이 있어서 그게 불편하거든.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되면서 다 같이 탈코르셋 행동을 많이 했을 때, 그때 탈코를 시작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여성성이 다 없어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 같아. 그 당시에 나도 일부 공감해서 했던 것도 있지만 ‘그럼 내가 남성이 되고 싶은 건가?’ 모르겠는 거야. 난 남성이 되고 싶지 않고 다 똑같은 모습이 되고 싶지 않은데, 그러면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안에 있는 여성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지 되게 혼란스러웠어. 그 시기를 지나고, 내가 여성이라서 가진 것도 있지만 나이기에 가진 것도 있는데 이건 절대 구분할 수가 없고 그게 전부 나이고 또 여성이며, 우리가 어떤 모습이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가영   그러니까 여성스럽다고 얘기하고 여성스러운 것을 피하는 게… 내가 여성이라는 성질을 가진 거니까, 여성의 성질을 살아내지 못하게 해.

무수   그래서 내가 가장 취약하다고 느낄 때가 누가 봐도 여성으로 보일 때야. 근데 나는 체구도 작고 그래서 누가 봐도 여성으로 보이긴 하거든. 근데 원피스나 치마를 입을 때 내가 가장 취약하다고 느끼고 약해지는 느낌이야. 그런 느낌을 받고 싶지 않은데 뭔가 공격받을 것 같으니까 그 모습을 자꾸 안 하게 되는 거지. 이렇게 느꼈던 건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 것 같아. 탈코를 하면서 많이 느꼈던 건 나에게 꽂히던 시선들이 확- 사라지는 경험이야.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하지 않고 안경 쓰고 옷차림을 편하게 다녔을 때, 그동안 내가 받아왔던 불쾌한 시선이 다 사라지는 거야. 그걸 느낀 순간 이 여성성이라는 게 나한테 취약하게 자리 잡은 거지.

가영   그럴 수 있지. 근데 그 경험이 너무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해. 나도 탈코도 해보고 원피스도 입었어. 그때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이 있잖아. 그렇게 내가 충분히 느끼고 나면 그다음에 내가 똑같은 옷을 입어도 이전이랑 똑같은 감정을 느끼진 않더라고.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입는 방식이 점점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 그래서 이제 여성성이라는 단어를 다시 내 걸로 가져오는 거거든. 모든 순간이 모여서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해. 

무수   퀴어라는 말도 원래 이상하고 특이하다는 단어로 쓴 것이지만 사람들이 재해석해서 되게 긍정적인 단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말로 자리하고 있잖아. 여성성도 그게 필요한데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잘 모르겠어.

가영   얼마 전에 친구랑 얘기했었거든. 그 친구는 가수이면서 인플루언서인데 공연을 할 때 성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거부감이 크고 싫고, 두려운 마음이 든대. 근데 컨택 즉흥할 때도 남자들이 어떤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면 우리가 느끼잖아. 그런 불순한 의도가 느껴질 때마다 자기가 되게 움츠러들고 무서워서 자꾸 피하게 된다고 하더라고. 나도 예전엔 그랬거든. 근데 최근에는 그 두려움이 사라졌어. 그 이유가 어떤 성적인 것, 성 에너지 자체를 내 걸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이걸 내 삶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없애는 마음을 가졌어. 삶에서 어떤 일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순간순간에도 계속 내가 지금 두려워서 피하고 있나, 그런 질문을 많이 던지니까 자연스럽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두려움이 적어졌어. 그래서 이제 컨택하면서 누군가의 그런 에너지가 느껴질 때 나는 선택지가 생긴 느낌이 들더라고. 예를 들면 지금 나는 이 에너지가 싫고 이 사람이랑 같이 성적으로 접촉하고 싶지 않다면 이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거지. CBC에는 흘려보내는 기법이 따로 있어. 흘려보내고 싶으면 흘려보내. 근데 때로는 흘려보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나도 성적 에너지를 활용해 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성 에너지에 관해 판단 자체를 안 하니까 되게 자유롭고 두려움이 없어졌어.

무수   나도 그 마음에 너무 공감해 그걸 내 언어로 가져오고 싶다가 그 에너지를 느끼는 순간, 나는 좀 피하게 되는 거야. 거리를 두게 되고 그러니까 CBC를 할 때도 그 사람과 안 하고 싶어지고. 근데 이게 내가 싫어서 피하는 건지 두려워서 피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근데 마주하기 어려우니까 제대로 탐구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이게 어렵다는 걸 CBC 하면서도 느꼈어.

가영   맞아. 그래서 우리가 안전한 장에서 실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고 하는 거잖아. 근데 여성성도 마찬가지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계속 내 것으로 가져오려는 실험을 조금씩 해야 하지 않을까.

무수   해야 해. 나는 여성성을 너무 좋아하거든. 소위 말하는 부드러운 말투, 다정한 태도,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난 너무 사랑하고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인데 그걸 단순히 여성적이라고 표현했을 때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부정적으로 느끼고 싶지 않은 거야.

가영   내가 여성인데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싶잖아.

무수   내가 자꾸 부정되고, 약하다고 느끼니까, 뭔가 바꾸고 싶은데 아직도 언어를 찾지 못하는 느낌이야.

가영   그래서 때로는 안전하기 위해서 여자만 모이는 경우가 있잖아. 그런 아이디어에 가끔은 찬성해. 어떤 의도나 맥락에 따라서 지지하는 편이고 그 안에서 여성성을 다채롭게 직접 경험을 해볼 수 있으면 일상에 가져오기 훨씬 좋아.

무수   지금 나의 언어로 여성성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가영   내가 생각하는 여성성의 이미지는 습하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에 어떤 줄기가 있어. 그 위에 이끼 같은 것도 있고, 그런 생명력이 넘치는 나무 같은 줄기야. 근데 예를 들어 남성성을 상징하는 어떤 인간의 톱 같은 게 와서 자르려고 했어. 근데 이 힘이 굉장히 강하면 톱도 튕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 나한테 여성성은 그런 이미지 같아. 근데 그 힘이 약해졌을 때 모습도 그려지지. 시들고 건조해서 잘리고 잘려서 더 이상 잘릴 것도 없어서 피 흘리는 모습도 상상이 돼. 근데 약한 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

무수   뭔가 진흙 같은 게 생각난다. 갯벌은 위에선 뭐가 보이지 않아도 되게 많은 존재가 그 안에 살아 있고 또 튀어나오잖아. 갯벌이 있어서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지.

가영   정말 많은 게 창조되는 강한 에너지인데 겉보기에는 약해 보일 수 있잖아.

무수   겉보기에 약해 보이는 것 같아. 근데 전혀 약하지 않은 어떤 성질.

가영   잘 휠 수 있어서 오히려 생명력이 강한 이미지.

무수   유연해서 강한 느낌이지. 부드러워서 강하고 그래서 똑! 부러지는 일이 없는 거야. 휘어지는 것뿐이지. 휘어지면서 확장되는 거지.

가영   맞아. 그래서 난 여성성이 너무 좋아. 여러 가지 신화에 나오는 인물 중에도 여성성을 가진 사람이 되게 많은 것 같아. 내 친구가 ‘드루가’ 라는 여신 얘기를 해줬어. 그 여자가 남자들이 잘못했을 때 그들의 목을 베는데 그게 으라차차 요란한 게 아니라 그냥 댕강하면서 웃음을 짓고 지나간다는 거야. 나는 가볍고 재치 있는데 결정적인 행동을 하는 게 여성적이라고도 느껴졌거든. 근데 이걸 옛날에도 다 느꼈구나 싶더라고. 어떤 근원이 있는, 뿌리 있는 우리의 좋은 성질이라고 생각했어.

무수   들으면서 떠오르는 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게 여성성인 것 같아. 지금의 세계에서 다른 언어나 문화,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게 여성성인 거지. 요즘 많이 느끼는 건 남성성에는 언어가 없고 세계가 없는 거 같아. 기존 세계를 답습하고 왜곡된 것이 많은데 여성들은 그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더 나아가고 또 새로운 세상을 펼치는 거 같아.

가영   맞아. 변화에 유연하고 유기적이라고 생각해. 물론 좋은 남성성도 있지. 남성성을 생각했을 때는 되게 뿌리 깊은 책임감이 떠올라. 아름드리나무처럼 판단하지 않고 그늘도 주면서 서 있을 수 있는 남성성도 되게 멋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안에도 남성성이 있지. 여자라고 해서 없는 게 아니야. 근데 여성성의 가치는 충분하지. 여성들의 모습에서 그게 많이 느껴져.

무수   반대로 좋은 여성성이 있는 남성도 있을 텐데. 그걸 드러내는 순간 그 집단 안에서는 여자 같다면서 괴롭힘을 당하니까 다 뭉개버리고 사는 세월이 길잖아. 그러니까 지금 좋은 남성인 사람과 내가 관계를 맺을 때도 차이가 느껴져. 우리는 그걸 계속 연습해 왔는데 이들은 이제 시작한 느낌.

가영   맞아. 나는 남성성에도 층위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표층적인 현상에서 남성성을 찾을 때는 전형성을 가지고 우리가 정의를 내리게 될 것 같거든. 근데 어떤 남성성의 원형으로 타고 올라간다면 그게 다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 남성성을 회복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야 성의 구분도 없어질 수 있는거고 내가 남성/여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그리고 또 하나는 남성들이 계속 자기 감정을 안 보면서 여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본인의 감정인데 그걸 여자들이 걱정하는 경우가 되게 많은 거야. 너무 흔한 패턴이잖아. 여자들이 그 남자 주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걱정해서 가시방석이 돼. 근데 그 남성은 몰라. 그래서 혼자 속 터지고 도와주려고 해도 결국엔 본인이 변해야 하는 거니까 잘 안되지. 그러니까 여자들이 처리해야 되는 감정적인 짐이 너무 많은 거야. 본인 것만 해도 힘든데 옆에 있는 남자의 일까지 가져오고 그렇게 되면 결국엔 여자들이 그 감정을 자기 감정으로 오해하기도 쉽다고 생각해. 너무 그게 문제야. 

무수   그러니까 가족에서부터 시작이잖아. 가족 안에서 아빠의 짐, 남동생의 짐을 다 여성들이 껴안아서 그걸 해결하려고 하는데 정작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어 힘들어지고.

가영   그게 진짜 문제인 것 같아. 그래서 난 여자들은 오히려 바운더리 설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 내 감정이 아닌 걸 구분하고 솎아 내는 것이 필요하고, 남자들은 자기 감정을 보는 게 필요하고.

무수   내 삶의 예술이라는 건 사회적으로 말하는 예술과 다르지만 활동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이 들어.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이고 활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과거의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까. 이런 변화와 굴곡 자체가 예술 아닌가. 그래서 앞으로도 기대되고 동시에 불안하지만 그게 또 예술인 것 같아. 그렇게 예술의 어떤 모습이 담긴 삶을 살면 좋겠다. 정형화되지 않고 안정적이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가영   대단하다. 지금 그렇게 잘 살고 있다는 게 진짜 대단한 거야.

무수   과거에 너무 경직돼서…지금이 그렇게 자유로운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 범위를 넘어갔지. 가영에게 예술이란?

가영   나한테는 몰입감이 예술로 느껴져. 깊이 몰입했을 때 자아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잖아. 세상에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연결된 느낌이 들고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이 드는 것 같거든. 그 확장된 시야 안에 나를 잃지 않았는데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걸 같이 느끼는 느낌. 어떤 종류의 몰입이든, 그 몰입이 깊어지면 그런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해.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매일이 예술을 하면서 사는 느낌이거든. 근데 그런 시간을 많이 못 가지면은 예술이 없어지는 느낌이야. 내 삶의 예술이 사라졌구나 싶어.

무수   그럼 어때? 예술이 사라지면 어떨까?

가영   사실 최근에 그런 느낌을 받았었거든. 그랬을 때 아주 무섭고 걱정되었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때때로 어떤 메시지가 들리거든. ‘다 너를 도와주고 있고 너의 등 뒤에 정말 큰 존재가 있으니까 원하는 거 다 해. 다 할 수 있어.’ 이런 메시지를 받는 느낌이거든. 그런데 몰입의 순간에 못 느끼니까 그 존재들이 다 어디 갔지 싶고,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고 갑자기 외로웠어.

무수   그래서 어떻게 했어?

가영   되게 외로워서 울고 있었어. 그때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있었거든. 근데 이상하게 그 순간에 우연히 어떤 사람이 와서 뒤에서 내 등에 손을 얹어줬어요. 엄청 따뜻하고 신기했어. 그때 생각한 게 정말 신은 사람 안에 있다. 모든 세상이 나에게 배움을 주고 함께하고 있으니까 더 특별한 걸 찾을 게 없겠다고 생각했어.

무수   그 순간이 나에겐 CBC 자리에서 가영이 나를 안아줬을 때 느꼈던 것 같아. 그때 내가 되게 외롭고 움츠러 들었는데 뭔가 내 마음을 들은 것처럼 가영이 안아줘서 ‘이런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구나. 그게 누구든 한 사람한테 한 사람만 있으면 일어날 힘이 생기는구나’ 생각이 들었거든. 

가영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했네.

무수   우리는 거의 2시간 반 가까이 얘기했는데. 소감을 나눠보고 마무리할까?

가영   얘기하면서 느꼈던 건, 무수가 참 사회에 도움이 되는 걸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때로는 체계화하고 모임의 이름을 짓고 같이 활동을 해나가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어. 대화하는 방식에서도 특정한 사안에서부터 출발해서 화두를 꺼내주고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이 무수답고 사회에 유용한 방식인 것 같다고 느꼈어. 그리고 집과 음식이 주는 느낌을 통해서 따뜻한 사랑을 느꼈어. 어제 잠도 못 자서 피곤했는데 환대받으면서 편안한 환경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

무수   와줘서 고마워. 나는 가영이랑 늘 이야기하고 싶은 거 같아. 특히 움직임이나 영적인 것, 근원적인 것을 깊게 나눌 사람이 별로 없는데 내 곁에 가영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해. 한편으론 이 대화를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려나 생각이 들긴 하거든. 근데 잡히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게 있을 것 같아서 가영의 에너지를 잘 담아서 전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