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온   아무한테도 의지 안 하고 혼자 알아서 하고 이런 의미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무수  "자기 힘으로 살려고 애써 보는 사람.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이게 한 문장이었죠.

주온   저도 다시 읽으면서 그 부분이 보였어요.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게 힘든 거 같아요. 내가 어떤 상황이라도 무엇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그 마음을 내는 게 진짜 힘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힘들 때 다른 사람 보지도 않고 마음이 좁아지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시간이면 시간, 돈이면 돈, 친절. 전혀 베풀 여유가 안 생기고 하다못해 다른 사람이 보고 있을 내 표정 관리를 하기가 싫은 거예요. 제가 마음에 힘이 다 떨어졌을 때 상태가 그렇더라고요. 근데 조금이라도 쉬고 회복하고 힘이 생겼을 때는 살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올해 초에 많이 느꼈어요.

무수   자기 힘으로 살고 있나요? 지금 말한 자기 힘의 정의로. 

주온   일단 덜 찌푸리려고 해요. 운동 선생님이 뭐라고 지적했냐면 제가 맨날 땅을 보고 있대요. 근데 땅을 보고 있으면 웃기가 힘들어요. 땅을 보면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내려가고 고개를 쳐들면 웃기 더 편하거든요. 충격받았어요. 내가 입꼬리가 처진 얼굴로 지내고 있었구나 싶어서요. 최소한 고개부터 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어요. 지난 4월에 몸이 안 좋아지면서 우울했어요. 왜 자꾸 생각지도 못한 멀쩡했던 애들도 아프기 시작할까. 오히려 웃어야 안 아프겠구나 싶더라고요. 지금 상황을 돌아봤을 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건 계엄, 내란, 기후위기 같은 것이고 회사도 하는 일도 사는 곳도 내 선택으로 어떤 건 감수하면서 한 일이니 받아들이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무수   <비폭력 대화>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 그 말이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회사 가기 싫으니까 ‘가야 되니까 가요’ 이렇게 말한단 말이예요. 그걸 비폭력 대화 방식으로 바꾸면 ‘내가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회사를 간다’ 말이 되어요. 그러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 선택한 일을 어쩔 수 없다고 표현했을 때 그게 듣는 사람이든 자신한테든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주온   불행하게끔 느끼게 하는 거죠. 필요 이상으로.

무수   저는 이 ‘자기 힘으로 산다’는 말에 독립적으로 사는 삶이 먼저 떠오르는 거예요. 그냥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삶. 그게 떠올라서 불편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해석하고 싶어서 질문했는데요. 저는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자기 힘인 거 같아요. 도와달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아요?

주온   책에서 수림이가 순례 씨한테 도와달라고 하잖아요. ‘나 여기 살아도 돼?’ 이렇게 부탁하면서. 엄청 용기 있죠. 자신이 돈 벌어서 20살에 독립할 거라고 계획을 세우고 떳떳하게 말하는 게 되게 멋있었어요.

무수   근데 수림이도 죄책감이 있잖아. 순례 씨가 자신을 어릴 때부터 돌봐서 삶을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그래서 저는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 많이 해본 적도 없고 첫째라 그런 것 같고요. 최근에 되게 힘든 상황이 있는 친구가 있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저랑 겹치는 모임이 꽤 있다 보니까 계속 그 힘듦을 말하는 걸 봤는데 제가 점점 불편해지는 거예요. 이게 왜 그런지 곱씹어보니 제가 그걸 잘 못하니까 받아주기가 버거웠더라고요. 이게 내 문제구나. 내가 도와달라고 말을 못 하니까 도와달라는 사람을 보고도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주온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무수   거리를 두고 있어요. 예전 같으면 더 무언가를 했을 텐데 연락을 나누며 응원하지만 적극적으론 하지 않고 있어요. 그게 아쉬워요. 그래서 진짜 연습하고 싶어요. 힘들 때 친구한테 어떻게 연락하냐면 ‘너 괜찮아?’ 이런 식으로 해요. 내가 힘드니까 다른 힘든 친구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근데 깊은 내면엔 내가 힘들다고 말하고 싶고 그걸 친구가 물어봐 주길 기다리는 거죠. 근데 ‘넌 어때?’ 물어보는 친구도 있지만 안 물어보는 친구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말하지 않아요. 이건 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주온   저한테 오늘 하루 어떠냐고 물어본 친구 있거든요. 제가 얘기를 하고 나면 ‘사실 나 이래서 힘들었어’ 하면서 말해요. 근데 자기 이야기부터 하지 않고 나한테 먼저 물어봐 줘서 되게 사려 깊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런 마음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무수   저는 누가 물어보면 되물어주는 걸 잘하는 데 그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자기 힘으로 사는 건 저한테는 힘들다고 말하는 건데 그게 잘 안돼요. 도와달라고 말하면 지는 느낌, 영원히 이 관계가 그렇게 고정될 것만 같은 생각이 있어요.

주온   어렸을 때 리더십 서적, 자기계발서 같은 걸 많이 봤는데요. 리더나 정치인들은 도움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수많은 정책을 만든다거나 일을 한다고 했을 때 혼자 못하잖아요. 모든 걸 통달할 수도 없고 혼자 다 할 수도 없고 오히려 도움을 잘 받는 게 되게 중요한 일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요.

무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죠. 제가 도와달라거나 말한 건 진짜 힘들어서 얘기한 건데 그걸 말할 때도 한 10%만 표현하는 것 같단 말이죠. 거절이 무서워서 더 작게 말하는 거죠. 많이 주고받는 경험이 쌓여야 해소가 될 거 같아요.

주온   자기가 힘든 걸 인지해야 부탁할지 말지 고민하잖아요. 저는 스스로 힘든 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몸이 먼저 아파서 알려 주는 거예요. 감정 때문에 몸이 부대껴서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계속 움직였거든요. 체력이 좋지 않은니 몸도 드러눕게 되더라고요. 그게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면서 왜 스스로는 몰랐지? 자기를 돌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로는 떠들고 다니면서 나는 그걸 모르는 건가. 그래서 출퇴근이 힘들다고 알아준 것도 얼마 안 되었어요. 출퇴근 다 하는 건데 그걸로 왜 유세 떠는 거야? 이러면서. 일보다 출퇴근이 더 힘들다는 걸 알아주는 게 중요하구나.

무수   진짜 알아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여유가 없으면 알아채지지 않아요. 급한 것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가잖아요.

주온   알아채는 것도 자기 힘이다! 자신의 몸・마음 상태를 아는 것. 그리고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것도 힘인 것 같아요. 그래야 그다음에 뭘 할지, 실천할 수 있는 길로 가거나 전략을 새로 짜니까요. 자기 힘은 다양한 종류가 있겠네요. 

무수   저는 이제 인지는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예민하게 알아차는데 이후에 타인이 결부되는 것이 어려운 거 같아요. 다 혼자서만 하려고 하니까.

주온   오늘 친구에게 무수네 집에 간다고 하면서 뉴스레터 얘기를 해줬는데 너무 신기하다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할까? 저는 무엇보다 혼자 한다는 게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타인이랑 서로 마감 정해주고 같이 해야 겨우 뭔가를 하는데 그걸 혼자 힘으로 계속 꾸준히 해나가 간다는 게 저는 진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수   오히려 저는 그 반대인 거죠. 혼자가 익숙하고 편한 사람인 것 같아요. 장점이라면 루틴을 잘 잡거든요. 생활 루틴이든 일 루틴이든 망가질 때도 있지만 그걸 잡아서 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타인이랑 하면 루틴대로 잘 안돼요. 그리고 내가 줄 게 없는데 이걸 어떻게 같이 하자고 하지? 이런 마음 때문에 혼자 오래 하게 된 것 같아요. 모어데즈도 예전엔 브랜드처럼 키우려고 했는데 지금은 나의 활동으로 두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과도 더 연결되는 지점을 찾고 장벽도 낮춰서 이렇게 초대하는 자리도 해보는 거 같아요.

무수   이거 왜 질문했냐면, 수림이가 아빠한테 하는 말이 있거든요. 아빠가 교수가 못 되고 계속 시간 강사 일을 하는데 그가 안쓰럽다가도 ‘오수림 너 이러면 좋은 대학 못 가!’ 이러니까 아빠한테 한심하다고 하잖아요. 할아버지 아파트를 장기 무단 점거한다고. 근데 저 모습도 한편 돈으로 평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순례 씨는 돈으로 베푸는 사람인데 그 모습을 닮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자기는 연체도 안 하고 조의금도 잘 내는, 돈 잘 버는 어른이 되길 꿈꾸는데 이 마음으로 누군가를 정말 돈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주온   그러게요. 아파트 원더 그랜디움이랑 빌라촌에 공간적 대비가 있잖아요. 책으로 순례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자세히 알게 됐지만 아파트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는 잘 모르긴 하죠. 근데 이 순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이 순례 씨와 1 대 1 관계가 아니라 서로 그물망처럼 관계가 있잖아요. 서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게 수림이 안에 되게 단단한 토대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무수   그 관계망이나 빌라촌 곳곳에서 느낀 것이 엄청 큰 자양분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소설에서 아빠가 나쁜 캐릭터처럼 나와서 그렇지만, 이 사람의 삶을 보자면 그렇게 한심한 사람인가 싶어서요. 당연히 부모 집을 뺏어서 살고 과하게 분수에 넘치게 사는 건 문제가 있지만 자기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사람을 한심하게 본다면 또 누가 한심하지 않은가 싶어요. 이 세상은 돌봄이나 도움도 돈으로 주고받다 보니까 결국엔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수림이가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 지점에서 계속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주온   그렇죠. 수림이 아빠도 시간 강사로 일하며 구조적인 문제 안에 있는 것이고. 그치만 얄밉긴 해. 고모들이 내용증명 보내잖아요. 어릴 때 너한테 우유와 계란이 양보한 걸 후회한다고 하면서. 아들은 집안의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여받았을텐데. 그리고 저는 수림이 할아버지가 너무 안쓰러웠어요. 딸 부부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다는 게 진짜 속상했거든. 너무 뻔뻔하게. 그래서 미웠어요.

무수   미운 점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할아버지 집에서 산다는 거잖아요. 근데 저도 엄마 집에 살고 있거든요. 이 집이 엄마가 남매끼리 살라고 해주고 시골로 가신 건데 그러면 나도 한심한 인간인가? 사실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의 재산이나 부동산에 빌붙어 사는 나를 어떻게 인식해야 되는지 그게 매번 어려워요. 어떻게 보면 수림이 아빠는 저랑 그 지점이 비슷한거죠. 부모의 집에 산다. 근데 은행 대출을 받아서 내 집을 사는 건 자기 힘으로 사는 건가? 은행이 인정하는 능력을 갖춰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자원이 생긴 건데 그렇지 못하면 한심한가? 이렇게까지 생각이 흘러가서요. 제가 여전히 부모 집에 사는 게 컴플렉스인가 봐요.

주온   근데 부모님이 원해서 시골로 가신 거 아니에요?

무수   원해서 갔죠.

주온   여기는 원하지 않았는데 쫓겨 나가요. 수림이 할아버지가 그들이 불편해서 쫓기듯 나간 거니까. 되게 다른 경우 같은데요.

무수   그건 저한테 작게 보이나 봐요. 그 사람도 나갈 수 있으면 나가고 싶었겠지?

주온   그들은 안 나가고 싶어 해요. 전혀. 그 아파트에 사는 걸 일종의 자격이라고 여기고 할아버지의 집이라는 인지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무수   이 집도 부모님이 나가길 바라거든요. 내 능력이 돼서 독립하길 기다리는 마음이 느껴지는데 전 그걸 하지 못하고 그런 저를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해요. 

주온   어려운 문제다. 그런 건 있죠.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부모님 집이 있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 너무 다른 계급 같아서 애초에 생각 안 하려고 하거든요. 집을 산다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공공주택 정책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것도 저는 문제라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너무 무책임하게 그냥 생각 안 해버리는 거예요.

무수   근데 생각해서 가닿아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안 되는데 어떻게 해요.

주온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하잖아요. 그러려면 아예 그냥 다른 길을 갔어야 되는 거죠. 이제 와서는 늦었는데 말이죠. 대학교 다닐 때부터 대출이 나올 걸 생각해서 집을 살 수 있는 직장을 다녀야 하는 거죠. 최근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토스 사내 복지 떠서 봤는데 저는 깜짝 놀랐어요. 1억까지 무이자 대출. 회사에서 그런 류의 복지가 나올 수 있다는 상상을 못한거예요. 근데 대기업은 그런 게 많을 거 아니에요. 이제 보니까 이건 한 달에 생활비 100만 원은 절약되는 복지인 거죠.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내가 의식 있는 길을 택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박탈감을 느끼는 게 맞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웃겼어요. 스스로한테.

무수   좋은 대학 가고 좋은 기업을 가려는 이유가 그게 다 붙어서 나오니까 대출도 잘 나오고.

주온   난 왜 몰랐지?

무수   알았으면 그쪽으로 갔을 거예요?

주온   그건 아닌데. 그러니까 웃긴 거예요. 할 것도 아니면서.

무수   저도 그런 마음 있어요. 동생이 공기업에 다니는데 목돈이 그냥 무이자로 나와요. 그걸로 차 사고 대출도 얼마나 잘 나오겠어. 개인 대출은 회사 신용이잖아요. 좋은 회사면 그냥 잘 나오는 거야. 저도 그 길로 가려고 했는데 안 되고 이 방식이 아닌 것 같아서 계속 흐르다 보니 여기 있는건데, 이 길에서도 살게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근데 이 길에선 안 살게 해주고 무조건 그쪽으로 가라는 거지. 그게 답답한 거예요. 

주온   저는 극단적으로 주류를 거부하는 쪽만 본 거죠. 그래서 그들보단 내가 보수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수   근데 그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대기업, 공기업, 엄청 잘 나가는 회사들만 그런 혜택을 주는 거고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 프리랜서가 훨씬 많은데 그 이야기들만 퍼져서 다들 박탈감을 느끼는 거야. 

주온   그 격차는 점점 더 커질 텐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이고. 그래서 ‘거기 너 들어갈 거야?’ 하면 안 들어갈 거니까 그래서 기본소득 운동하는 거죠. 기본소득 받고 지역에서 최소한의 임금 노동을 하고  관계를 풍요롭게 가꾸면서 자연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활동하는 그런 이상적인 삶으로 꿈꿔요.

무수   우리가 단체에서 같이 읽은 책 <공유지의 약탈>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순례 씨가 공유지를 만드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주온   맞아요. 저도 그 책으로 독서모임할 때 처음으로 BIYN가 공유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체 규모가 크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지 않아도 꾸준히 BIYN 라는 공유지를 가꿔 나가는데 나도 기여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무수   기여하고 있죠. 계속 활동하셨잖아요.

주온   제가 처음 회원이 돼서 활동하려고 할 때, 단체에 임원이 없어서 문 닫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기본소득도 잘 모르고 활동가로 일한 적도 없는데 덜컥 임원을 맡았거든요. 문 닫는 것보다는 못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그건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힘들긴 했었어요.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고비를 넘기고 문을 연 채로 있으니까 사람들이 들어오고 저도 재미있게 활동했으니까요. 단체 활동에 기복은 있지만 그래도 각자 상황에 따라서 기여할 수 있도록 계속 열려 있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무수   저도 BIYN가 공유지라고 느껴요. 이런 이야기를 할 곳이 많이 없거든요. 노동 시간을 줄인다든지 어떤 쓸모로 돈을 받는 게 아니라고 얘기하면 ‘이게 무슨 소리야?’ 이런 반응을 듣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게 건강하게 나눌 수 있는 장 자체가 공유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온   올겨울에는 국가의 민주주의라는 공유지를 지키기 위해서 다들 애썼죠. 그래서 이제 혼란 없이 한국에서 잘 살고 싶다고 인정했어요. 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보다 더 확실하게 하는 것 같아요. 

무수   저도 거리에 나가면서 큰 연결감을 느꼈거든요. 역설적으로 광장에서의 힘든 시간이 많은 연결감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작게는 얼마 전 거리에 떨어진 종이 쓰레기를 주웠어요.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종이가 바람에 날려서 차도에 갔다가 인도에 갔다가 그러면서 운전자 얼굴 쪽 창문에 붙기도 하는 거예요. 마침 제가 지나가는데 굴러오길래 주워서 가방에 넣고 갔어요. 그게 내가 이 공간, 이 거리에 기여하는 행동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거리도 다 공유지니까.

주온   맞지. 안전에 기여하고 어떤 사고로 예방하고 동료 시민을 돌보고. 

무수   주온님은 최근에 길고양이 구조했잖아요.

주온   저도 길고양이를 귀여워만 했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곁에 있는 친구들 여럿이 있어서 눈 질끈 감고 해버렸어요. 이전에 <고양이들의 아파트> 다큐멘터리를 봐서 그것도 영향이 있는 거 같아요. 

주온   저는 ‘순례’라는 키워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았어요. 작가의 말을 보면 이 이름을 아껴놨다고 하잖아요.

무수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내 인생의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 이 구절이 너무 좋았어요. 자기가 베풀면서 감사하다고 얘기하잖아요.

주온   저도 좋았어요. 순례자로 산다는 게 뭘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이나 수도자들이 순례하는 것처럼 죽을 때 그냥 머물다 간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꼭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순례자의 관점과 태도를 잊지 않으려고 해요.

무수   이상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걸 생각하면 종교인의 삶인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랑 둘러앉아서 얘기하고 좋은 말씀과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해 먹고, 종교인의 삶인 거예요. 근데 스스로 종교인으로 사는 건 또 상상이 안 돼서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거죠. 

주온   저랑 비슷하네요. 어렸을 때 엄마가 ‘수녀님 되는 거 어때?’ 이러면 수녀님이 숭고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럼 맨날 회색 옷만 입어야 되잖아’ 라고 말했어요. 나는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싶고 컬러풀한 옷도 입고 싶고 그런 거에요. 대학 땐 제가 여성이 아니었으면 혹은 여성 사제가 될 수 있었다면 더 고민했을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봤을 때 수녀님보다 신부님이 조금 더 자유로워 보였거든요. 내가 세속에 살면서 수도자의 태도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무수   너무 공감돼. 그 세계 안에서도 여성은 차별받으니. 저는 종교는 없지만 굳이 고르자면 불교가 마음 편한데 머리를 미는 것도 상상이 잘 안돼요. 그리고 불교는 가부장적인 부분도 있고 여성이 가지 못하는 자리가 있으니 그 삶도 어렵더라고요. 

주온   순례 씨도 환경적인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도 순례를 넣은 것 같아요. 뭔가를 소유하거나 착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구에 머물다 가는 게 순례자라고 보는 것 같기도 해요.

무수   요가도 철학이 있거든요. 그게 저한테 종교 같은 느낌인데 그 요가 철학 중에 ‘아힘사’가 있어요. 그게 비폭력, 살생하지 않는 걸 이야기해요. 그리고 네가 많이 가졌다면 다른 사람 것을 가져오는 것이라며 탐욕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순례자는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살면서.

주온    감사의 반대와 소비라는 게 재밌어요. 최근에 느낀 건 소비를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이게 어떤 단계를 거쳐서 나에게 오고 가는지까지 다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순례자는 짐을 많이 지고 다닐 수 없기도 하죠.

무수   여행하면 느끼지 않아요? 이 짐만으로 내가 충분히 살 수 있는데 일상이 돌아오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온   제가 출근하면서 지겨움을 덜기 위해서 내일 뭘 입을지 열심히 고민하거든요. 나름의 즐거움으로. 근데 저는 옷이 조금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다르게 입었는데도 겹치지 않는 거예요. 중간중간 계절이 바뀌니까 똑같은 옷으로 여러 번 입을 일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옷이 많은가보다 생각했어요. 

무수   저도 규칙이 옷이 옷장을 넘어서면 나누거나 버리는 거예요. 웬만하면 잘 안 사려고 하고요. 이걸로만 충분히 생활이 되는데 사고 싶은 건 그냥 욕심인 거죠. 옷이 해지면 꿰매면 되고, 살 일이 없죠. 순례자처럼 살면 되겠다. 뭔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거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소감을 나누고 마무리 해볼까요? 대화하면서 어땠어요?

주온   너무 어려운 질문들이었어요. 근데 답해야겠다는 부담은 없었어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로 이런저런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무수   맞아요. 이런 질문을 평소에 하기 어렵잖아요. 만나도 그 자리의 대화가 흘러가니까요. 이렇게 물어보기도 하고 서로의 가족사를 들으며 재밌고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