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을 타는 당신에게

마침 퇴근 시간이던 어느 저녁,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 승강장 앞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출입문이 열리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한가득. 사람들의 눈은 핸드폰으로, 귀는 이어폰에 있습니다. 그다음 홍대입구역 출입문이 열리자 쉼과 잠이 필요한, 허기진 사람들이 우르르 탑니다. 눈은 멍한데 몸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저마다 몸 하나를 겨우 세워두고 다시 닫히는 문. 적막함이 감도는 순간, 익숙한 안내방송 사이로 부드러운 기관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걱정과 근심, 불행한 생각은 지하철에 두고 내리세요.”

 

정확하진 않지만, 두고 간 건 자신이 퇴근하며 치우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어쩜…시처럼 아름다워라’ 괜히 마음이 따스해지더라고요. 노동하며 승객들의 마음까지 살피는 분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몇 정거장 지나 다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명의 아기가 절실한 저출산 시대입니다. 임산부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임산부 좌석을 양보해달라고 말하면서 덧붙인 말이었습니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야’ 임신으로 몸이 힘들어지는 임산부를 배려해달라면 충분할텐데, 임신한 여성보다 나라의 희망인 ‘아기’를 품은 여성이라 의미있다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묘하게 뒤틀리고 모든 게 다 불편하게 느껴졌죠. ‘저출산’이라는 단어에 문제적이었던 가임기 여성지도가 떠오르고 여성이 임신/출산의 도구인가,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몇 정거장 지나 녹음된 안내방송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임산부나 교통약자가 계시면 자리를 양보하는 여유를 가져 보심이 어떨까요? 모두가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는 우리 모두를 기분 좋게 합니다.”

 

‘아…제발 그만해!!!’ 짜증이 불쑥 났습니다. 한 사람도 위태롭게 서 있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여유라는 단어가 얼마나 공허한가요. ‘모두가 힘들지만’은 얼마나 폭력적인가요. 무거운 짐을 약한 개인들에게 떠맡기는 같았습니다. 왜 우리는 계속 서울로 출근하고 서울에서 퇴근해야 하는지, 왜 같은 시간에 밀집해서 움직이게 만드는지, 이 출퇴근 컨베이어벨트에 타지도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여러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이동권의 문제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으로, 불평등을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개개인의 문제로, 여성과 남성,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사람들은 거칠게 나뉘고 지겹게 싸웁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사회구조, 혐오와 차별은 손에 잡히지 않아 앞에 보이는 사람을 탓하고 싶어지죠. 정말 문제는 모두가 힘든 일상. “한국에서 누가 행복해? 행복한 사람 없어” 친구의 말이 스쳐 갔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괜찮은가요? 울렁울렁 어지러운 지하철 아니 세상에서 무사한가요? 저는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하고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이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부디 힘들면 쉬어가세요. 한 사람인 그대가 무엇보다 소중하니까요. 이 글은 편지니까 걱정과 근심, 불행한 생각은 답장에 적어주세요. 기쁨과 희망, 눈부신 순간도 적어주세요.

지하철에 자주 펼쳐읽었던 윤은성 작가의 시집 ❮유리 광장에서❯에서 시 하나 남기며 이만 줄일게요. 또 편지 쓸게요.

개관일

 

나의 즐거운 마음도

나의 외로운 마음도

 

함께 화를 냈던 동료도

 

지금은 잠시 나는 다행히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 같기도 한데요.

 

외로움이 변하면 무엇이 되는지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지

부정확한 문장도 정확한 문장도

답처럼 보였다가

뒤로 물러가고

 

커다란 환기팬이 천천히 돌고 있는

화랑 유원지 미술관 1층

대기 공간

 

밖 길게 호수를 따라서 조성된 산책 길

 

손을 닦고

 

생각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그래도

아무래도 여기에선 너무 어렵다고

 

유원지에는

완성 없는 얼굴에 시시각각 너무 빠르게 다다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있고

 

사라질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적다가

 

봄이라 볕을 따라 이곳에 들른

가족과 친구들이

강아지와 연인들이 많아요.

 

금요일이고요.

 

잠시 

시간의 손이 나의 옷깃을

여며주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생각하는 다섯 시인데요.

 

한동안 내 친구로부터는

답장이 잘 오지 않아요.

연락을 내가 잘

안 하는 거였나 돌아도 보고요.

 

아주 큰 일이

커다란 일이

촘촘한

볕인데

 

웃음 짓는 친절한 얼굴 앞에서는

나도 안심하게 되곤 하고

돌아보면 그래서 더 어려워지기도 하는데요.

 

돌아갈 곳을 잠시 만들어주는

저녁 같은 웃음이라고

 

좋다고

 

익숙해지지 않는

봄을 자주 보내고 있습니다.

2025년 3월 14일

☘️ 지하철을 타며 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