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   밀크티 마셔보세요. 괜찮아?

수빈   풍부한데. 따뜻한 두유 이런 거 좋아해

무수   나도 덕분에 해 먹었네. 대화를 해볼까? 수빈이 영화 <서브스턴스> 보자고 했잖아.
그 이유가 있었어?

수빈   무수가 조건을 줬잖아. 혐오와 사랑이 연관되는 거 그리고 대중적인 것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서브스턴스>가 바로 떠올랐어. 최근에 본 것 중 혐오랑 엄청 얽혀있는 영화니까.

무수   맞아. 나도 추천을 진짜 많이 받았어. 친구들이 후기도 많이 올렸는데 자세한 건 없어. ‘미쳤다’ 이런 후기 혹은 엄청 울었다는 친구도 있었어.

수빈   친구가 이걸 보자고 했는데 고어 영화라고 소개하는 거야. 그래서 안 본다고 했어. 그러다 검색했는데 이건 소위 미친 영화라고 하는 거야. 찾아보니까 너무 흥미로운 거지. 

무수   저번 둥그런 옆자리에서 질문을 각자 적고 그걸 뽑으면서 얘기했는데 괜찮더라고. 수빈과도 그렇게 해볼까 싶어.

수빈   응 좋아요.

무수   펜을 줄게. 메모지를 가져왔어.

수빈   미리 생각해 왔어. 나한테도 그럴까 해가지고.

무수   역시 주도면밀해. 수빈은 왠지 준비할 것 같았어. 질문 기대된다. 수빈이 먼저 뽑아볼까?

수빈   ‘내가 타인으로부터 가장 신경 쓰는 나의 모습은?’ 외모, 표정, 행동 아니면 심리 같은 거. 꼭 들키고 싶지 않아 이런 것도 있고. 

무수   내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얘기하는 거 그리고 내가 연인 관계를 원한다는 걸 보여주는 게 힘들어.

수빈   연인는 보통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 ‘의존한다, 의지한다’ 그럼 무수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신경 쓰이는 걸까?

무수   의존은 괜찮은데 사랑을 갈구하는 느낌? 그게 싫어. 연인이 없어도 괜찮은 사람으로 더 보여지고 싶은 거. 원하는 것도 있는 마음이잖아. 근데 그 마음은 잘 안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 그래서 신경 쓰는 모습이라 생각했을 때 나는 숨기는 마음인 거야. 수빈은 뭐 있어? 가장 가장 신경 쓰는 것.

수빈   무표정이죠. 다 일맥상통해. 나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나에게 엄청 갇혀 있어.

무수   무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수빈   맞아. ‘나 지금 표정 어떻지? 웃고 있지 않나?’ 서브스턴스의 스마일 공포 버전으로 나와도 될 것 같아. 숨기고 싶은 마음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부정적인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해. 예를 들면 텐션 낮은 나, 우울한 나, 슬픈 나. 짜증 내고 싶은 마음도 숨기고. 최근에 생리전 증후군이 좀 심했거든. 이유는 모르겠는데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마음이 너무 힘든 거야. 근데 그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엄청 고민하다가 반차를 냈어. 항상 좋은 컨디션, 최고의 효율을 낼 때 나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 오늘 일이 안 되면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건데 ‘오늘 최고의 컨디션 아니야. 반차 때려’ 이런 느낌.

무수   어릴 때 그랬는데, 일기장에 첫 페이지가 완벽하지 않으면 찢어버리는 거야. 그런 마음이지? 내가 생각했던 완벽한 모습이 아니면 안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거야.

수빈   맞아. 어떻게 보면 나만 보는 건데.

무수   근데 찢어버렸어.

수빈   나는 아예 안 썼어. 쓰다가 일기장 첫 페이지에 글씨가 마음에 안 드는 글씨다? 그때부터 손이 안 가더라고.

무수   만약에 무표정이고 기력이 없고 아픈 모습의 수빈을 사람들이 봤을 때 어떨 것 같아?

수빈   진짜 농담 안 치고 영화 마지막에 괴물이 된 엘리자베스 모습일 것 같아. 그 정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아. 너무 무서워 나에겐. 

무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봤어. 그러면 반응이 어떨 것 같은데?

수빈   왜 이래요? 오늘 왜 이렇게 상태 안 좋아요? 약간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나한테.

무수   걱정하겠지. 말투가 약간 다그치는 느낌인가?

수빈   아니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겠지. 근데 그걸 듣는 것도 너무 싫고. 내 모습이 싫으니까 나를 걱정하는 말조차도 독이 되는 거야. 얘도 지금 나처럼 생각하고 있나. 그래서 엘리자베스와 수의 관계가 자기혐오로 연결되면 너무 나한테 공감되는 일이야.

무수   자기혐오 얘기지. 자기혐오 다 있으니까.

무수   제가 뽑아보겠어요. 이 질문 진짜 하고 싶었어. ‘영화에서 거울 앞에 있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엘리자베스는 늘어지고 탄력 없는 몸을 불만족스럽게 보고 수는 자기 몸에 취해서 만족스럽게 보잖아. 그럼 나는 거울 앞에서 내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수빈   생각해 보면 거울 앞에서 나체의 내 몸을 바라본 적도 진짜 오래된 것 같아. 무수는?

무수   예전에 나는 내 몸을 안 보려고 했어. 내가 렌즈나 안경을 쓰지 않으면 선명하게 안 보인단 말이야. 그게 오히려 좋았어. 화장실에선 다 벗고 들어가니까 내 몸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돼서 그게 좋았다. 내 몸을 싫어하는 거야. 근데 내 몸을 잘 마주하게 된 건 요가하면서부터. 그동안은 내 몸을 기능적으로 써본 적이 없는 거야. 내 몸이 싫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바꿀 기회가 없었는데 요가를 하면서 내 몸을 써보고 기능적으로 경험해 보면서 잘 마주하게 되었어. 요가복이 되게 딱 붙고 얇거든. 보여주기 싫고 낯설었는데 이건 보여주기 위한 옷이 아니라 움직임을 위한 옷이더라고. 요가하면서 좋았던 건 어디가 빠지고 찌고 이런 느낌이 아니라 몸 자체가 정돈되는 느낌. 그게 어느 정도는 만족감이 드니까 내 몸을 수용하게 되는 게 있지. 그전까지는 내 몸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건 ‘나는 왜 가슴이 작을까?’ ‘뱃살이 왜 이렇게 나올까?’ 이런 것이 항상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이유지. 내 몸을 부위 부위 보는 거야. 이 시선은 내 시선이 아닌 것 같아. 타인의 시선으로 내 몸을 자꾸 보는 것이 어릴 때부터 형성이 된 거지.

수빈   타인의 시선은 이제 미디어에서 길러진 것이고.

무수   사회적으로 예쁘다고 말해지니까 나도 저 몸 갖고 싶고. 수빈은 어때? 지금도 잘 못 바라보고 있어?

수빈   사실 내 머릿속 대부분의 생각은 표정에 관한 거 같아. 표정 90%, 몸 10%? 근데 나 그런 적은 있어. 내가 엄청 마른 편인데 그런 얘기 많이 좀 들었어. ‘수빈은 전체적인 밸런스에 비해서 허벅지가 굉장히 발달해 있다.’ 옛날에는 칭찬으로 안 들렸어. 어렸을 때는 너무 상처였어. 요즘은 미디어에서 허벅지 튼튼하면 건강해 보인다, 이런 얘기가 나오니까 그때부터 나도 그럼 건강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벗어났지. 미디어에 아주 그냥 팔랑팔랑.

무수   나도 마르다는 얘기 많이 들었거든. 친구들은 다이어트를 많이 하니까 부러워하는 거야. 내 몸을. ‘너는 먹을 거 걱정 안 하고 좋겠다.’ 그러는데 나는 내 몸을 싫어했으니 마른 몸을 왜 원하는지 이해를 못 했어. 말라도 싫은데 내 몸. 이러나저러나 여성들은 몸으로 행복할 수 없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수빈   나는 반대로 말랐다 하면 '내가 좀 말랐지~' 이런.

무수   어? 취해있는데? 만족하고? 수인데.

수빈   확실히 엘리자베스는 아니에요.

무수   나는 엘리자베스.

수빈   나는 오히려 수가 더 위험한 것 같아.

무수   둘 다 위험해. 나는 내 몸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싶은데. 이건 좋고, 이건 싫고 이러니까 힘든 거야. 그래서 하미나 작가가 쓴 <자유로운 몸의 문화> 칼럼이 인상적이었어. 그분이 독일에서 지내거든. 독일엔 ‘에프카카’라는 문화가 있대. 나체주의 혹은 자연주의라고 얘기하는데 그래서 독일에는 나체로 있을 수 있는 바다, 사우나, 공원이 있는 거야. 다 벗고 자연의 몸으로 있는 그대로 휴식을 즐기면서 서로 평등하게 지내는 문화거든. 작가님이 관련 축제를 갔는데 그곳에서 혼자 아시아 여성이고 덩치가 큰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데 몸이 막 떨렸다는 거야. 두렵지. 편안하지 않잖아. 그래서 내내 울었대. 내 몸을 이렇게 바라봐왔구나, 계속 여성의 몸으로 이걸 겪었구나, 느끼면서 울었다고 해. 근데 유럽의 한 부부도 잘 얘기하다가 아내가 울고 그걸 다독이는 모습을 봤는데 내 슬픔이 나만의 슬픔이 아니구나. 다 슬픔이 있구나. 내 몸을 온전히 봐주지 못한 것에. 그 사람의 눈물에 자기도 울고 앞에 있는 친구도 울고. 나도 한 번도 내 몸을 온전히 바라본 적이 없는 거야. 저러면 진짜 자유롭겠다 싶었어.

수빈   그러게. 모두가 다 벗고 있는 곳에서 몸은 몸일 뿐인데…뭔가 나라도 혼란스러울 것 같아. 이야기 들으면서 울컥했어.

무수    엘리자베스도 수도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있는 그대로 못 보고 이런 몸이니까 사람들이 날 사랑해 주겠지 만족하고 이런 몸이니까 사람들이 날 싫어하겠지 힘들어하잖아.

수빈   몸이 되게 성 상품화되어 있다는 게.

무수   특히 여성의 몸이 그렇지. 그러니까 나도 내 몸을 자꾸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게 너무 싫으면서 벗어나기 힘들고.

수빈   애인 만나면서 되게 많이 신경 쓰게 된 것 같긴 해. 옷차림, 표정, 몸매.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그게 불만족스럽다거나 만족스러운 건 아닌데 신경이 쓰이는 건 확실히 맞는 것 같아. 사람을 내가 되게 좋아하잖아. 이 사람의 취향에 맞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 같아.

무수   맞네. 사랑받고 싶으니까.

수빈   맞아. 사랑받고 싶으니까 어떻게 보면은 갇혀 있는 거가 아닐까. 엘리자베스나 수처럼. 나도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좀 더 내 몸을 자유롭게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냥 '몸' 혹은 기능적인 몸으로 보고싶다. 

무수   내 친구가 수영을 엄청 추천했어. 정말 수영복 하나뿐이고 샤워를 같이 하면서, 내 몸이 아무렇지 않아지고 다른 사람의 몸도 아무렇지 않아지는 거야. 그걸 해보라고 엄청 추천을 해줬어. 그래서 좀 시도를 해봐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어.

수빈   맞아. 나도 단짝 친구들이랑 오랫동안 몸을 안 트게 되더라고. 그래서 최근에 사우나 한번 갔는데 샤워할 때 약간 쭈뼛거리게 되는 거야. 아무리 친한 친구인데도 서로 벗은 몸을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은연중에 기분 때문에. 그래서 내가 선두로 아무렇지 않게 훌렁 벗고 샤워했단 말야. 그랬더니 애들도 되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야. 그게 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 

무수   그런 걸 좀 해야 될 것 같아. 어릴 때는 수영장도 다니고 했는데 어른되서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다시 시도하면서 평가에서 벗어나는.

수빈   서로 별거 아니다.

무수   별거 아니다! 

무수   이제 마지막 질문! ‘나의 시간을 빼앗아 늙게 만든 수, 아름다운 수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엘리자베스, 그들은 서로 죽이려 한다. 피바다가 되는 자기혐오의 순간, 나는 어떤 나를 미워하는가?’ 

수빈   정말 다양한 것 같아. 무표정이고 웃지 않는 나만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이런 나도 싫고 저런 나도 싫어하는데 너무 다양해.

무수   그럼 아까 얘기하지 않았던 것 중에 또 있어?

수빈   1인분의 몫을 하지 않는 나도 종종 미워하는 거 같아. 소위 이 사회에서 제대로 1인분을 못 하는 상태일 때? 스스로를 너무 미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것 같달까. 예전에 많이 아팠을 때 딱 그런 감정을 느꼈어. 그때가 사회적으로 많이 시끄러웠던 시기였어. 강남역 살인 사건도 있었고. 그때 페미니즘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이 힘들었나 봐. 모든 게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어. 이유 없이 아프기도 하고 우울감도 있었고. 우울의 주요 원인은 가족과의 갈등이었어. 가족들과 말하는데 모든 말에 혐오가 묻어 있는 거야. 뒤늦게 알아채니까 너무 감당하기 힘든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끙끙 앓았던 거 같아. 꽤 오랫동안 이유 없이 아팠어. 몸까지 아프니까 더 소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되게 내가 미웠어. 왜 이러지 나는? 왜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서 나를 더 힘들게 만들지? 그때 살짝 안 좋은 생각을 하기도 했어.

무수   왜 예민하게 반응하지? 하면서.

수빈   맞아. 한동안 장이 너무 안 좋아서 먹으면 다 토하고 그럴 때가 있었거든. 그때 내가 우연히 거울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어. 볼이 엄청 패여 있는 거야. 눈 밑도 꺼져 있고 다크서클도 심하고…그 얼굴을 보는데 내가 너무 보기 싫으면서 안쓰러워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나. 근데 그 기간이 실제로 길진 않았어. 한 달 정도? 짧은 시기였지만 그때 아픈 나, 약한 나를 미워하고 여러모로 힘들었던 기억이 나.

무수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 어떻게 괜찮아지게 된 거지?

수빈   나한테 계속 연락을 해준 좋은 친구가 있었어. 그리고 부모님과도 계속 얘기를 하려고 했어.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며 부모님이랑 얘기를 하면서 많이 울었고. 많이 울면서 스스로 좋아졌다고 느꼈던 것 같아. 사실 부모님이랑 대화하면서 진짜 죽을 거 같았거든.

무수   보통 힘들면 대화를 안 하기를 선택하는데.

수빈   친구가 용기를 북돋아줬어. 무엇보다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더라고. 안 좋은 생각까지 하다가 퍼뜩 느낀 거야. 안 되겠다, 싶어서 글로 막 하고 싶은 얘기 써서 식탁에 놓아두고 엄마랑 교환일기를 쓰기 시작했어. 처음부터 대화할 용기는 안 났거든. 글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리있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엄마랑 나랑 둘이 막 껴안고 울었어. 어쩌면 나의 작은 기질 덕분이 아닐까?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이 에고가 가끔 나를 살리기도 하는 것 같아. 어떤 면에서 나는 밝고 긍정적인 모습도 있으니까 이렇게 살 수만은 없어, 나가서 햇빛 좀 쐬자 하면서 나를 챙기려고 했던 거 같아. 근데 말하고 보니까 되게 심각한 것 같은데 한 달밖에 안 됐어. 

무수   아니. 한 달도 길어. 아프면 하루가 되게 영겁의 시간 같이 느껴지잖아. 한달은 긴 거지. 그게 아직도 생생하게 남을 정도니까. 되게 힘든 시간을 지나왔구나.

수빈   무수도 그런 게 있어. 좀 나를 미워하는?

무수   나를 미워하는 거. 옛날엔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미워하지 않아. 

수빈   미움받을 용기가 있네. 어떻게 하는 거야? 그렇게 되려면? 시행착오가 많이 있을 것 같아.

무수   나를 많이 안 미워하게 된 건 내려놓음인 것 같거든.

수빈   뭘 내려놔?

무수   돈에 대한 욕심, 일에 대한 욕심 그런 것들 다 내려놓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

수빈   그게 생각하는 거랑 마음으로 진짜 내재화되는 거랑 다를 텐데…

무수   내려놓으려면 엄청 아파야 돼. 마음이든 몸이든 아파서 이걸 내려놓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 죽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냥 내려놔지더라고. 그래서 이제 미워할 게 별로 없는거야. 내가 돈을 안 벌어도 일을 하지 않아도 미워하지 않아. 아프면 쉬게 해줘야지.

수빈   맞아. 최근에 무수가 ‘생리는 내가 피를 흘리는 거 아닌가, 이런 나를 위해 쉬어줘야 한다’고 했을 때 약간 신선한 충격이었어. 맞네. 피를 흘리고 있네. 말한 걸 실현시키는 태도, 그런 모습이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야. 나도 말로 내뱉는 걸 넘어서 진짜 내재화시키고 싶어.

무수   크게 힘들었을 때가 조직에서 가스라이팅 당했을 때. 그러고 상담을 받았는데 내가 능력적인 부분, 돈을 벌지 않는 나를 너무 미워하더라고. 그걸 알아차리고 많이 내려놨지. 

수빈   나도 많이 내려놓고 싶다. 그럼 엘리자베스도 상담을 받았으면 좀 달라졌을까?

무수   우리나라에 진짜 성형수술 진짜 많이 하잖아. 수술하기 전에 상담을 필수로 받아야 되는 게 아닌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성형수술을 하는데 이게 맞나 싶어서.

수빈   최근에 느낀 게 어떤 뷰티 전문 기업이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는데 영상에서 ‘제가 처음 받아보는데 어떤 시술부터 받아야 될까요?’ 묻는거야. 댓글에 ‘30대입니다. 젊을수록 진짜 빨리 하시면 좋은 게 시술 보톡스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브스턴스> 보면서 화났던 사람인데 내가 댓글 보면서 ‘시술해야 되나’ 이런 생각하게 되고...현대 사회가 보여주는 미의 기준이 나를 되게 얽매이게 하고 그게 우리 엄마 세대에서도 여전히 계속 되고 있는 것 같아. 노화에 대한 두려움. 엘리자베스도 늙은 모습을 스스로 부정하잖아.

무수   맞아. 영화에서 몸이 갑자기 바뀌는데 처음엔 나이 든 몸이잖아. 나이 든 몸이 이상한 몸이 아닌데, 그런 공포감이 있는 거야. 나이든 몸은 나도 적응해야 되는 몸인 것 같거든. 이전 몸과 다르니까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 몸이 스스로도 낯설고 어색하고 싫기도 한 감정들이 올라오는 건 자연스러울 수 있는데 그래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 근데 우리 엄마, 아빠는 다 흰머리 나는데 아빠는 그냥 두거든. 근데 엄마는 항상 염색을 해. 왜 그럴까? 여자라서 그렇겠지.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아.

수빈   왜 그럴까? 우리 엄마도 그래. 우리 엄마는 염색 너무 많이 해서 머릿결이 안 좋아졌어. 탈색한 것처럼.

무수   엄마한테 ‘흰머리 자연스럽게 둬도 예쁘잖아’ 말했는데 엄마가 그건 좀 추하다는 생각을 하더라고.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외모 압박과 강박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이 숨 쉬듯이 느끼는 것 같아.  

수빈   영화가 되게 극대화해서 보여준 것 같아. ‘너 이렇게 외모 신경 쓰다가 엘리자베스처럼 된다, 괴물이 진짜 될 거야.’ 이런 걸 보여준건가 싶기도 해. 시각화가 중요하구나 싶은 게 보여주니까 저렇게 하면 안 돼! 싶더라고. 

무수   진짜 잘 만든 영화다.

수빈   그러니까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었고 다 의미 있어. 너무 고통스러운데 얘기 나누면 이야깃거리가 끊임없이 생산될 수 있어서 너무 잘 만든 영화 같아. 

무수   이제 마지막 질문까지 했는데 소감을 들어볼까? 오늘 얘기하면서 어땠어?

수빈   무수랑 엄청 깊은 얘기를 한 거 같아. 그래서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어. 나도 웃는 것에 대한 강박이 엄청 심했구나, 이게 말로 뱉으니까 확실히 알겠는 거야. 웃지 않을 때의 나도 자주 알아차리고 괜찮다고 생각해야지 다잡게 됐어.

무수   나도 내 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상이나 신체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거든. 그러면서 수빈한테 말해보고, 말함으로써 자유로움을 주는 것 같아. ‘더 벗어날 수 있겠다. 이미 내 치부를 말했으니까’ 이런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것 같아.

수빈   나는 사랑을 되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거든. 덕분에 오늘은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아. 내 취약점을 드러내고 포용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끼니까. 이 대화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던 것 같아. 오늘만큼은 무표정인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것 같아.

무수   감사합니다. 무표정인 수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