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   다음 질문은 내가 뽑아볼게. ‘요리와 미나토는 빅 크런치를 맞은 후 어떻게 됐을까? 각자의 결말을 어떻게 봤는지.’ 나도 이 질문이 있는데! 나는 빅 크런치를 찾아봤어.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찾아봤는데 이게 빅뱅 우주론에 입각한 우주 멸망론이래. 우주가 빅뱅이 일어나서 이렇게 생겨난 건데 빅 크런치는 이게 반대로 작아지는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으로 이해했어. 

  처음 봤을 때 마지막에 무조건 ‘살았구나’ 생각했어. 그 이후에 연극 <bee>를 봤는데 주인공이 병에 오래 앓아서 마지막에는 부모와 간병인이 도와서 약을 먹고 자살하는 걸로 끝나. 근데 그 장면을 어떻게 그리냐면, 무대 벽이 사라지고 푸른 언덕 나오면서 거길 막 뛰어다니는 장면으로 그려져. 그래서 난 그걸 보고 갑자기 영화가 생각난 거야. ‘죽었구나’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이번에 다시 봤는데 영화에서 그려진 장면으로 생각했을 때는 죽은 거 같지만 다시 생각을 바꿨어. 뛰어가기 전에 그런 대사 있거든. '우리가 다시 태어난 건가?' '아니 다시 태어난 건 없어. 우리 원래 그대로야' 하면서 막 뛰어가는 장면인데 원래 그대로라면 죽지 않았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유랑   난 처음에는 죽었다 생각했어. 현실적으로 태풍이 크게 왔고 산사태가 일어났는데 그 폐전철에 들어가서 살 수가 있어? 당연히 죽었겠구나 라는 생각했어. 그리고 애들이 그냥 사람들이랑 비슷하게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빅 크런치를 생각을 하는 걸까 싶기도 했고. 근데 나도 요리 얘기를 들으면서는 큰 사건을 맞고 ‘이대로 살아가야지’ 라고 다짐하는 순간으로 보여주고 본인 모습대로 살아가는 장면을 아름답게 그려주는 거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무수   맞아. 어떤 큰 사건이 다가오면 그다음의 삶은 새 삶을 사는 느낌이잖아.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유랑   죽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이 또 크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건가. 

무수   그때 나는 연극을 보고 나서 죽었다고 생각했잖아. 그때 마음이 되게 처참했어. 결국에 죽어야 해방되는 일인가. 아픈 사람도 동성을 좋아하는 일도 혹은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가 이 생이 끝나야지 해방되는 일인가. 죽음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너무 슬픈 거야. 근데 살았다고 믿으니까 마음이 오히려 더 좋아.

유랑   마음이 편해졌어.

무수   믿는다는 거 있잖아. 어떤 증거를 보고 명명백백해서 믿는 거는 믿는 게 아니잖아. 그냥 사실 확인을 하는 거잖아. 사실이 어떻든 내가 믿는 게 중요한 것 같아. 그래서 살아 있다고 믿기로 했어.

유랑   맞아. 진짜 마지막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답잖아. 세상이 이 친구들이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거 아닐까 라고 믿고 싶은 것 같기도 해. 왜냐하면 영화 속 사실이 힘드니까.

무수   믿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유랑   맞아. 믿어야겠어.

무수   또 하나 뽑아보시죠.

유랑   제가 뽑아볼게요. ‘사람은 아무도 자신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완전히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 죽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 같아. 호리 선생님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던 것처럼 그 장면 트럼펫 소리와 함께 전환되는데 호리 선생님은 어떻게 옥상에서 내려오게 된 걸까?’ …나 생각해 보지 못했어.

무수   나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저 사람 어떻게 내려왔지 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유랑   거의 진짜 극단에 간 상황이긴 한데 진짜 낭떠러지까지 간 거였잖아. 호리 선생님 진짜 너무 슬펐거든. 내가 교사였잖아.

무수   그니까 너무 공감 많이 되지 않았어?

유랑   진짜 사라지고 싶었을 것 같아. 호리 선생님이 미나토한테 막 뭐라 하잖아. 내가 너한테 뭘 했길래 이러냐고 그 마음이 너무 이해되거든.

무수   근데 미나토가 거짓말했다고 말하잖아. 그래 나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폭력 교사로 오해하고 학교도 그만둬야 되고.

유랑   기사도 뜨고 기자도 찾아오고.

무수   미나토가 내려가면서 넘어졌는데 호리 선생님 밀었다고 애들이 또 소문을 퍼뜨리고 그때 이제 옥상에 올라가거든. 내가 뭘 해도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구나 이 생각이 드니까.

유랑   누구도 믿고 싶지 않고 자신을 믿는 사람도 없고. 근데 내려왔으면… 어쨌든 트럼펫 장면이랑 진짜 연결되는 거잖아. 미나토가 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요리 말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교장 선생님에게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잖아. 기적처럼. 호리 선생님한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던 거 아닐까? 그 장면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때 선생님 한 명이 쫓아오잖아. 그 선생님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했을까?

무수   나도 그 생각이 들었어. 누가 쫓아오는데 이 사람을 믿지 않아도 이 사람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했을 것 같다 라는 생각도 들어. 학교 옥상에 올라간 거는 죽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 것 같거든. 내가 이렇게 억울하고 나를 좀 알아달라는 마음이기도 하잖아. 나는 자살이 약간 그런 느낌이 좀 있는 것 같아. 정말 힘들어서 죽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힘든 나를 좀 봐달라고 외치는 느낌. 우리 할아버지도 자살로 돌아가셨는데 그게 나 힘들다고 외치는 느낌이기도 했어. 그 빌미로 자식들을 찾아오게 하고 연락을 받고 자신을 걱정하게 하고 이걸 되게 극단적으로 표현하신 게 아닐까 생각을 하는데 호리 선생님도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 그랬을 때 누군가가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쫓아와서 '너 죽으면 안 돼. 죽지 마' 그런 모습을 봤을 때 마음이 또 달라질 수도 있겠다.

유랑   영화 내내 호리 선생님에게 마음을 전한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다 의심하고.

무수   학교도 지켜준다고 하지만 절대 지켜주는 게 아니고 그 사람 오해하게 만들고 고립시키고 내보내고.

유랑   그러고 집에 돌아가서 요리의 글을 보고 알게 되는 거잖아. ‘내가 오해했던 게 있었던 거 같아. 내가 그걸 보지 못했구나’ 생각해서 미나토를 찾아가는 거잖아. 호리 선생님이 되게 좋은 선생님이긴 한데 극단의 상황까지 갔으면 난 그게 안 보였을 것 같단 말이야. 근데 그 정도의 마음이 남아 있는 상태인거지. 그걸 발견하고 미나토를 찾아가는거면 그러니까 분명히 뭔가 마음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기는 해. 이건 좀 궁금하다. 뭔가 대본집 같은 거 없나..

무수   갑자기 불쌍하다. 호리 선생님.

유랑   호리 선생님 너무 불쌍해. 

  

무수   생각보다 술술 시간이 가네.  내가 뽑을게. ‘학교의 구조가 만든 괴물들 그리고 그 구조 속 소통의 부재가 만든 상황들. 상황에 따라 각자의 위치와 힘이 달라진다는 것이 잘 보여지는 영화였는데 이러한 공간 속에서 서로 잘 소통되고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질문이네요.

유랑   <괴물>이 1,2,3부로 나뉘어져 있잖아. 각자의 시점으로의 그 상황들을 그려주잖아. 그래서 한 부 한 부만 봤을 때는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되게 명확한데 그 상황을 전체로 봤을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엄청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순간들을 되게 잘 그려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난 사실은 학교라는 곳이든, 사회라는 곳이든 엄청 그런 상황들이 많은데 그걸 생각하지 못한 채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만들어지는 문제 같기도 해서 고민이 됐어.

무수   어떻게 소문의 소문에, 오해의 오해에, 곡해가 일어날 수 있지. 근데 너무 이해되고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고 그럼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잘 연결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영화 초반에 미나토 엄마가 학교 찾아가서 되게 영혼이 없는 눈으로 교장과 선생님들이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울먹이면서 ‘인간이 맞냐. 인간이냐’ 물어보잖아. 그게 질문인 것 같아. 그래서 인간이라면 무엇을 해야 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인간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되는지 그걸 묻는 것 같거든. 결국에 우리는 서로 오해하는 존재이고 소문을 내는 존재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런 것이다.

유랑   아무리 가까워도 믿음 자체가 불가능한 거야. 믿는 존재가 얘기를 하더라도 가끔씩 의심하는 순간들이 계속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워낙 서로 말을 많이 하니까 주변에서 이미 그 사람에 대한 인식, 각자의 위치에서 보는 인식들이 있잖아. 그게 내 안에서 정보로 취합이 되면 더 이상 이 사람이 이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거나.

무수   계속 생각, 이야기, 소문들을 정립해놓고 내 시선으로만 그 사람 보잖아. 결국에 그거는 그 사람이 아니고 그냥 내가 생각하는 사람인거지.

유랑   맞아.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

무수   근데 우리가 잘 연결되려면 이걸 인지하고 어떻게든 한 꺼풀 벗겨내려는 노력. 그래서 내가 보는 이 사람이 아니라 정말 이 사람을 봐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유랑   소문이든 편견이든 나한테 박히는 순간 이 사람이 뭐라 얘기하든 안 믿기잖아. 근데 난 그 영혼 없는 눈빛의 선생님들 이 딱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이 앞에 있는 엄마는 악성 양육자, 민원인처럼 느껴지는 거지. 그래서 그냥 이 사람이 어떤 마음이고 지금 왜 왔고 이 상황 자체를 해결하려기보다는 그냥 빨리 끝낼 수 있게 진짜 근본적인 거를 찾기보다는.

무수   편견 있잖아. 혐오의 피라미드 중에 가장 1단계가 편견인데 이 사람 싱글맘이고 과보호하고 원래 싱글맘 좀 그래 그러니까 악성이고 이 사람 어느 정도 무마해서 그냥 넘기면 돼, 사과하자, 약간 이런 거.

유랑   맞아. 난 거기서 되게 안타까웠던 게 호리 쌤도 싱글맘 자녀잖아. 그래서 애인이 싱글맘이라 그렇다는 얘기했을 때는 아니라고 하는데 이미 본인도 미나토 엄마를 그렇게 생각하는 게 느껴진단 말이야. 본인이 분명 당사자로서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받았던 인식들로 똑같이 바라보게 되는 상황들이 마음 아팠던 것 같아. 안타깝고.

무수   그래서 나는 말이 너무 중요한 것 같아. 혐오는 별거 아닌 말에서 시작되고 일어나는데 그게 내가 싱글맘 자녀로서 연인이 편견의 말을 했을 때 옳지 않다고 했지만 이미 그 말이 내 안에 들어와 버린 거야. 그래서 어떤 순간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내 부모가 그래서 과잉보호했나 라고 오해하게 되고 내 눈앞에 이 싱글맘 양육자한테 ‘왜 이래. 너무 예민하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이 말이 너무 중요한 거 같아. 그걸 부정하더라도 이미 내 귀에 들어오고 내 머리에 들어와.

유랑   이미 다 인식이 된 거지. 내 속에서.

무수   누군가는 이 사람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잖아. 그러니까 이게 너무 사소하지만 너무 중요한 거야.

유랑   내가 본 게 다라고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듣는 거 본 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미 이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더라도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되고 어떤 생각인지 나누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갑자기 무서워졌어. 내 안에도 그런 것들이 많겠지.

무수   많지. 그래서 나는 혐오를 얘기할 때 되게 마음 깊이 어떤 것을 생각해야 되는거 같아. 이게 머리로 하는 게 아닌 것 같고 어떤 가치관 싸움을 하는 게 아니고 정말 영적인 힘이 필요한 것 같아. 너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고 우린 연결돼 있고 네가 고통받으면 나도 고통받고 이걸 우리가 정말로 진심으로 느껴야지. 우리가 쉽게 하는 오해나 소문을 걷어내고 듣는 자세를 노력이라도 하지. 그런 힘이 없으면 절대 안 되잖아. 그래서 이 문제들을 어떤 지점에서 논리적으로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만 나는 논리적이지 않지만 심연의 무언가와 연결지어서 얘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유랑   마음을 움직이는 게 사실 가장 중요한 것 같아. 그러니까 아무리 논리적으로 얘기하고 설득하고 설명을 하더라도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움직여지지 않는 거잖아. 그래서 다양한 소통의 방식이나 다양한 운동의 전략이라든지 새로운 방식들이 필요할 것 같아.

무수   너무 필요한 질문이었어. 유랑 뽑으세요

유랑   이거 그거다. 

무수   같은 질문이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 질문. 그러면 마지막 질문. ‘괴물을 보면서 내 일상 또는 고민과 맞닿아 있거나 연결된다고 생각했던 장면은?’ 일상, 고민...차 한 잔 마시고.

유랑   재밌다. 콘텐츠 볼 때마다 이렇게 친구들이랑 해야겠어.

무수   그러니까 좀 재밌는 것 같아.

유랑   나는 최근에 논문을 썼잖아. 논문의 큰 줄기가 대안학교든 학교든 퀴어 청소년이 됐든 소수자가 안전하거나 편안하거나 환대를 받으면서 살 수 있는 공간인가, 이게 되게 큰 줄기였어. 그래서 그게 나한테 요새 되게 고민이란 말이야. 내가 편안한 공간이 있나 아니면 내 친구들은, 이 퀴어 학생들은? 그러면서 보니까 조금 달리 보였던 장면이 빅 크런치를 대비하자 하고 이것저것 들고 가서 그 폐전철을 꾸민단 말이야. 행성도 붙이고 전구도 붙이고 이러잖아. 그러고 나서 알록달록하게 꾸며놓은 장소에서 괴물 놀이도 하고 딱총 놀이도 하고. 그래서 그 장소가 미나토와 요리에게는 본인들이 만든 진짜 자기들 모습대로 살 수 있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장소처럼 느껴지는 거야. 근데 그 장소가 어른들이 만들어둔 장소가 아니라 본인들이 찾은 장소에서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서 거기서 그 시간들을 만들어낸다는 게 나한테는 되게 크게 다가왔었던 것 같아.

무수   직접 발견한 장소, 직접 꾸민 장소, 은신처이자 안식처인 곳.

유랑   어린이 같은 경우에는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이유로 어른들이 오히려 안전의 틀을 만들어서 가두는데 그 장면 자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거였네,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어.

무수   지금 유랑한테 그런 공간 어디야?

유랑   내 차. 차에서 제일 편하게 있을 수 있는거 같아. 지역 살 때는 내가 산촌에 살았으니까 집도 그런 공간이었거든. 난 가끔 너무 답답하면 좀 소리를 지르고 싶단 말이야. 그냥 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근데 도시에 오게 되면서 빌라에 사니까 그게 아예 불가능하잖아. 그래서 차 운전할 때.

무수   나는 뭐가 있지? 일상 또는 고민. 나는 그걸 노력하는 것 같아. 여기서 미나토가 요리를 뭔가 친구가 아니라 연인 관계로 생각하는 건가 라고 인지하게 되는 순간 요리를 밀치고 도망치는 그런 장면들 있잖아. 근데 나도 약간 그런 거 같거든.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밀어내려는. 그게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처받기 싫어서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유랑   좋아지고 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내가 오히려 상처받을까 봐?

무수   응. 친구 관계에서는 좀 덜 그런 편인데 뭔가 연인으로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라든지 그런 관계가 떠오르는 사람을 밀치는 느낌. 의도적으로 관심 없는 척하고 눈길을 안 주는 행동하는 게 있는 것 같아.

유랑   뭐 때문에 무서운 걸까? 멀어지려고 하는 걸까?

무수   그러게. 내가 더 긍정적인 표현을 해야지 뭐가 생기기도 하는 건데 그게 잘 안돼. 그래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런 감정을 매번 느끼진 않으니까 흔한 감정은 아니잖아. 그래서 연습이 안 되는 거지.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는 그게 엄청 고민이었어. 이 마음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근데 친구들이 내가 표현한 거는 한 것도 아니래. 근데 나는 그것도 너무 힘든 거야. 기다리게 되고 실망하고 이런 과정들이.

유랑   나는 한 20대 후반에 마지막 연애를 끝으로 나는 더 이상 연애를 하고 싶어서 사람을 만나거나 좋아하는 감정을 깊이 생각을 하는 것에서 멀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단 말이야. 연애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망한 연애들, 망한 관계들이 계속 나를 좀 무섭게 만드는 것 같은거야. 뭔가 썸을 타거나 하는 상황에서 내가 더 적극적으로 했는데 이 사람은 별로 그런 마음이 아니면 어떡하지, 연락했는데 답장이 안 오면 어떡하지, 하고 지레 겁먹어서 좀 도망치는 게 있는 것 같아. 

무수   근데 내가 연인 관계를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었던 것 같아. 그전에 만났던 사람들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때는 가족 관계도 더 좋지 않았고 나한테 더 좋은 친구들이 많지도 않았고 깊게 연결된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 느낌이었는데 유일하게 연결되고 가깝다고 느낀 사람이 연인이었거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 그러니까 그 관계에 더 특별하게 의미 부여를 많이 하고 모든 걸 함께 하려는 생각이 있으니까 상처받을까 봐 겁이 나고 상처가 깊었던 거 같아. 근데 지금은 친구와 연인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 상태거든. 차이가 있다면 스킨십 정도. 근데 마음의 차이는 난 잘 모르겠어. 이걸 깨닫고 나니까 이제는 덜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유랑   나도 가족과 관계 안 좋고 한 20대 후반까지는 커밍아웃 한 친구들이 많지 않았으니까. 진짜 애인밖에 없는 거야. 올인하게 되고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계속 나도 상처받고 계속 실망하고 내가 너무 기대를 하니까. 근데 나도 지금 그냥 내 관계들을 보면 애인이랑 데이트하는 것처럼 만날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원하는 취미든 활동이든 같이 만나면서 할 친구들이 있으니까 오히려 관계를 맺을 때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아. 어쨌든 연인이든 친구든 좋아하는 감정을 전하는 거는 비슷한 형태일 수 있으니까. 

무수   여러 얘기를 하게 되네. 질문은 다 했어.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어땠어? 

유랑   <괴물>은 사람들이랑 많이 나눠보고 싶은 영화거든. 질문을 많이 던지는 영화잖아. 그래서 마침 무수가 얘기를 나누자고 해줘서 너무 좋았고 확실히 혼자 봤을 때 뭔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나 흘러 지나가기만 했던 장면들을 같이 나누다 보니까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아서 좋았던 것 같아. 

무수   같이 얘기 나누면서 유랑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이렇게 많이 운 유랑을 본 적이 있었나?

유랑   나 많이 울어…

무수   미나토가 한 말 ‘자기가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게 들통날 것 같다.’ 이 비슷한 생각을 유랑도 오래 15년 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많이 겪어 왔구나 생각이 들어서 이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또 모를 얘기니까. 그걸 알고 듣고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던 것 같아.

유랑   무수는 그런 힘이 좀 있는 것 같아.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좀 있어. 무수한테.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주는 사람인 것 같아. 그래서 이 자리가 되게 좋았어.

무수   그런 말해줘서 감동이다. 고마워.

유랑   고마워요...너무 따뜻한 주말이네.

무수   울 줄 알고 손수건 가져왔어?

유랑   늘 장착되어 있어. 내 주머니에

무수   시간 내줘서 너무 고마워.

유랑   아니야. 초대해 줘서 고마워. 뉴스레터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