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노래를 부르는 당신에게

모보이스를 쉬어간다고 말하곤 약 한 달이 지났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우린 2025년으로 넘어왔고 세상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연말, 새해보다 무탈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고가 없는 무탈한 세상은 찰나 누렸던 평화라는 걸, 쉬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일상이라는 걸 모두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12월엔 여러 날을 거리에 있었습니다. 계엄 다음날 국회로, 활동하는 친구들과 긴 시간 여의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탄핵이 가결되던 날은 여의도공원에서 ‘다시 만난 세계’ 노래와 풍물패 소리에 춤을 추었습니다. 친구의 생일날엔 국민의힘 당사까지 행진하며 외쳤습니다. 박근혜 탄핵집회를 함께 했던 친구와 추억을 손꼽으며 광화문에서 윤석열 탄핵집회를 했습니다. 8년 전에는 다이소에서 샀던 촛불 전등을 들고 지금은 수많은 응원봉과 재치 넘치는 깃발에 둘러싸여 서울 도심을 행진했습니다. 실제 거리에서도 느꼈지만, 집회 참여자들은 대다수 젊은 여성들과 나이 든 남성들이었습니다. 수많은 젊은 남성들은 어디 갔을까요? 이건 저만의 의문은 아닌지 여러 언론사에서 2030 남성들이 집회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를 분석해 기사를 냈습니다. 저는 윤석열을 찍지 않았고 계엄에 분노했던 남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왜 집회를 나가지 않느냐고. 동생은 행동하지 않기를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무조건 거리에 나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같은 시국엔 너도 국민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라 말했지만 동생은 그런 제가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좋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내려두고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집회에 나가는가?’

저 역시 처음부터 집회에 나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가장 컸던 마음은 아마 절박함이었던 거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점과 같은 존재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을 일으키고 문밖을 나서고 입을 열어 소리치는 일. 그것뿐이고 또 그걸 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몸을 가만히 두고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여러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누군가는 나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혹은 안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을거라고 말할 수 있을거예요. 그런데 집회에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다를게 없다면, 저는 그래도 참여하는 쪽으로 기우는 사람인거 같습니다. 세상의 결과가 다르지 않더라도 그 과정 속에 달라진 내가 있기에 하지 않기보다 하기를 선택하곤 해요. 그런데 재밌는 건 세상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내가 변한다면 그만큼 큰 변화는 없거든요. 왜 세상은 더 빨리 나아지지 않는지 원통했던 시간이 지나고, 달라지지 않는 내 주변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보내고 이젠 거리에서 몇 시간은 두렵지 않은, 쉽게 밖으로 나가는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집회에 나가는 건 특히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이렇게 큰 일들에 둘러싸이면 생각이 그 속에 갇히잖아요. 혼자 집에서 기사를 보는 게 저는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느끼는데, 그건 정말 혼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나만 이렇게 분노하고 답답해하는 건가, 곁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기가 쉬운거 같아요. 근데 일단 집회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있고 서로 비슷한 마음으로 외치게 됩니다. 집회뽕이라는 말도 있거든요. 거기엔 기사에 없는 웃음이 있고 재미가 있고 환호가 있고 박수가 있고 외침이 있습니다. 그래서 집회에서는 실제로 많이 춥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벗어나 늦은 식사를 하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방전된 몸을 발견하곤 하죠. 내가 힘들었구나 하면서요. 어쩌면 정신의 힘듦을 육체의 고통으로 맞바꾸는 일 같기도 하지만, 긴 집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선 그렇게 잘 잘 수 없습니다. 재밌죠.

이번 탄핵집회에서 크게 느낀 건 연결이었어요.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이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본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같은 일에 같이 기뻐하고 분노한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같은 노래를 부르는 날은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이번 사태로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은 혼자 길을 걸어가는데 정말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숨 쉬고 있는 이 세상 곳곳 모두 내가 있을 자리 같았습니다. 문을 꼭 닫아걸었던 어두운 마음 깊은 곳까지 볕이 들었습니다. 이런 충만한 순간이 앞으로 우리가 관심 가질 사회문제에서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감각은 집회 연대 발언의 목소리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부산 집회에서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의 발언을 화제가 되었죠. 

2024년 12월 11일 부산 서면 집회에서 유진님의 발언

“저는 저기 온천장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저를 경멸하거나 손가락질하실 것을 알고 있지만, 오늘 저는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그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자 이 자리에 용기내어 올라왔습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선 이유는 다름 아니라 여러분께 한 가지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건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정치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저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것이 끝이고, 해결이고, 완성이라고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서른 살의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분의 이야기도 SNS에서 회자되었습니다.

2025년 1월 4일 서울 집회에서의 발언

“안녕하세요. 저는 이 겨울에 서른이 된 시민입니다. 조금은 침울한 소개가 되겠습니다만, 저는 가정폭력 피해자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생활을 길게 이어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스스로 벌어먹고 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동등하게 설 자격을 얻었다 느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주저앉혀지는 것이 익숙합니다. 맞으면 엎드리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 조용히 있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습니다. 그것이 관성이 되어 저는 지금도 누워 지냅니다. 제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휘청거릴 때 손잡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 목소리 낸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지난날, ‘젊은 애들은 나태해서 국가에게 돈 달라고 요구나 하러 시위 다닌다.’는 가족의 모욕을 듣고 뛰쳐나와 남태령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양곡법이 무엇을 보장하는지, 농민이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인지했습니다. 그를 발단으로 저는 매일 집 밖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이제야 이들의 이야기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전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집회에서 발언하는 시민들과 단 한 번이라도 인간으로서 마주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요구가 부당하거나 이기적인 것이라고 쉽게 낙인찍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그저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를 몰랐을 뿐입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사실 궁극적으로는 맥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권력에 의해 주저앉혀지고 싶지 않아 투쟁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 타자화되고 비인간화된 채로 착취당하는 모든 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읽으며 제가 하고픈 말을 이들이, 그리고 이들이 하고싶은 말을 이미 거리에서 사람들이 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친구가 제주항공 참사를 보며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는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에 저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나도 인간이고 그 사람도 인간이고, 인간이란 타인의 고통에 힘들어지게 만들어진 존재인 거 같다고요. 우린 아파하는 이에게 무자비한 사람을 두고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잖아요. 그래서 내 이야기와 같은 이들의 발언에 저는 한 문장을 더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간으로 당신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당신의 분노에 함께 목소리 내겠습니다. 영원히 인간으로 살아겠습니다.”

2025년 1월 10일

☘️ 당신과 노래를 부르는 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