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 공감하고픈 당신에게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어"

전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개인적인 감정을 말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성혐오가 아닌 혐오문제를 말하고 싶었고, 한 존재 안에 여러 혐오와 차별이 교차한다는 ‘교차성'에 깊이 공감하며 매주 뉴스레터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급문제를 말하게 될지는 몰랐어요. 사실 계급이 뭔지 자세히 몰랐거든요. 막연히 신분제는 사라졌어도 자본과 인맥, 명성 등으로 이 시대의 새로운 계급이 있다는 정도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1월, OTT 서비스 웨이브에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봤어요.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크게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 등 4가지 영역으로 구분 지어지는데요. 쉽게 비유하자면 MBTI 같은 것입니다. 정치에서는 좌파・우파, 젠더에서는 페미니즘과 이퀄리즘, 계급은 서민과 부유, 개방성에 개방과 전통으로 나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생각을 이렇게 납작하게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꽤나 흥미로웠어요. 특히 프로그램 내에서 사람들이 젠더로 갈라지겠다고 추측했지만 이보다 계급으로 여러 선택이 달라지는 걸 목격했어요. 덕분에 잘 몰랐던 계급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비슷한 시기 저는 대림동 지역에서 살며 활동하는 이주활동가를 인터뷰했었어요. 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대림동 범죄율이 사실 다른 주거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에요. 근데 그건 이주민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문제예요. 대림동은 가난한 동네니까, 유흥가니까 사건사고가 생겨나죠.”

대림동은 이주민이 많이 살기에 위험하다는 잘못된 편견이 있는 동네인데요. 이는 결국 이주민이 있다는 이유로 퍼진 혐오이자 계급문제를 교묘하게 덮는 이야기인 것이죠. 활동가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혐오문제가 계급과 깊이 연결되어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노동자 계급・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대부분 혐오를 겪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퀴어. 가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사람들, 돈을 벌 방법은 노동밖에 없는데 늘 불안정하고 위험하고 저임금의 일자리만 얻게 되는 사람들, 장애가 있거나 어딘가 아프면 노동조차 힘드니 빈곤 상태가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죠. 특히 계급은 한 개인의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데요. 작게는 매 순간 이걸 살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상이고, 크게는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그리는 상상력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계급에 따라 누군가는 오랜 공부 기간과 학비가 들어가는 전문직 길을 선택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당장 다음 달 생활비와 대출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이 바로 만져지는 일에 뛰어듭니다. 

이 중요한 계급문제를 왜 우리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을까, 답답해하던 차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이자 독서 공동체 ‘들불’을 만드는 구구님을 만나 지난 3월 <머니맨숀>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머니맨숀의 부제는 계급을 말하는 곳.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게 시작이니 그걸 같이 시도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구구님을 책으로 북클럽을 진행하고 저는 책과 연결된 기사를 짚고 저마다의 계급을 말하는 글쓰기 활동을 구성했습니다. 활동을 고민하며 글을 먼저 써봤는데요.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이토록 검열이 올라오는 글이 있었나 놀랐습니다. 크게 두 가지 생각이 충돌했는데요. 하나는 ‘내가 빈곤을 말하기에 충분히 가난한가’. 또 하나는 ‘내 계급을 말하면 내쳐질 거 같고 동정과 은근한 무시, 따돌림을 당할 거 같다'였습니다. 계급문제를 말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저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가 그동안 왜 많이 나눠지지 않았는지 단번에 느꼈죠. 다행히 제겐 ‘구구'라는 멋진 동료가 있어서 그를 붙잡고 자주 힘들고 어렵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제 글이 좋고 충분히 나눌 의미가 있다고, 처음은 원래 어렵지 않냐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사실 그가 아니었다면 혼자서 감히 계급을 나눠보자고 상상하지도 못했을테니, 제가 이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게 만든 건 아마도 구구님인 거 같네요. 

그 덕분에 저는 <머니맨션>에 모인 이들과 함께 말하지 못했던 제 계급 이야기를 찬찬히 나눴습니다. 아빠의 실직으로 작은 집으로 이사 갔을 때 이를 숨기려고 했던 어린 날의 한 조각을, 노력을 안 해서 가난한 거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반항심이 들면서도 가난이 두려워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혼자 새기던 순간을, 택시를 탈 때마다 자책하게 되는 마음을, 수능을 망친 것뿐인데 인생이 망했다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시절을, 경제적인 빈곤보다 마음의 빈곤이 커서 떠나간 할아버지를. 계급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고 하나둘 말하고, 하나둘 들으며 계급 이야기가 점점 어렵지 않아졌습니다. 안전한 곳에서의 말하기는 일상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평소엔 부모님이 마련해준 곳에 사는게 부끄러워 자주 숨겼는데 그렇지 않게 되었고요. 또 수입이 없는 달엔 진짜 가난하다고 말해 친구에게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계급을 말하게 해준 사람이 구구님이라면 친구 A는 제가 계급문제를 아프게 느끼게 해준 사람이에요. A는 같은 대학에서 만나 오래 가까운 관계로 지낸 친구입니다. <머니맨숀> 프로그램에도 함께 해주었어요. 그 덕분에 제가 몰랐던 친구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되었죠. 한번은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밥 사먹을 돈이 빠듯해 도서관 구석에 앉아 고민했던 순간을 나눠주었어요. 그때 저는 용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면서도 내 상처만 너무 커서 우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친한 사이라 우린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제와 돌아보니 전 가까운 친구의 아픔을 조금도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어느 저녁, 동네를 산책하다가 그게 무척 슬프고 미안해서 벤치에 앉아 친구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적으며, 그 후 한동안 밖에서 엄청 울었어요. 혼자 아픔을 견딘 친구가 안쓰러워서 그 곁에 있으면서 아픔을 나눌 존재가 되지 못한 제가 미워서요. 한참 울고는 혼자 보는 메모장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아픔을 영영 모르는 게 얼마나 슬픈지, 사랑하는 이가 겪는 아픔에도 내 책임이 있다. 문제를 알아야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있다. 계급문제 그리고 혐오문제를 마주하는 건,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사랑이다.’

꽤나 심각하죠. 근데 진심이에요. 그리고 친구에게 더 자주, 더 오래 이 문제를 이야기하자고 말했습니다. 우린 여전히 말하지 못한 게 많으니.

누구나 자신의 계급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급문제가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이게 얼마나 많은 불평등을 만들어내는지 뒤로 하고, 나의 위치가 어디고 너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 속에서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결국 힘든 누군가를 돕고 싶고 내가 힘들 때 도움받고 싶다’ 그게 계급문제를 말하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이를 나누지 않으면 도와주겠다는 말도, 도와달라는 말도 불가능하니까요. 

여전히 가까운 사람과 계급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특히 수평적인 관계인 친구에게 계급을 말하는 순간 우리 사이에 위계가 생기게 되는 지점, 껄끄러워지고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며 우리가 가까운 관계 맺을 수 있을까, 계속 고민됩니다. 그럼에도 빈곤이 개인의 탓이 아니며 가난 역시 장애와 마찬가지로 극복할 문제가 아니고 계급은 운 좋게 혹은 운 나쁘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걸 이해한다면 서로 다른 계급을 나누며 우리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어때요? 제가 또 허황된 생각을 하는 걸까요? 무수의 편지를 적을 때는 늘 떨리는 마음이에요. 이게 부디 나만의 생각이 아니길, 누군가가 공감해주길 기다립니다. 그러니 읽고 하고픈 말이 생긴다면 답장을 주세요. 편지는 읽는 당신도 쓸 수 있답니다. 반가운 답장을 기다리며 글을 마칠게요.

2024년 7월 12일

☘️ 아픔을 숨기지 않고픈 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