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가족은 뭘까요? 이 질문에 오래 붙잡혀있어요. 외면했던 질문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지난 1월 말 할아버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뿔뿔이 흩어진 아빠의 원가족들.

할머니는 약 20년 전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까지 떠나자, 그들은 더 이상 서로 볼일이 없는 사이처럼 설날에 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온 가족을 잃은 아빠는 종일 멍하다며 한숨을 내쉬었고, 30년 넘게 맏며느리 역할을 순진하게 성실하게 수행한 엄마는 하소연할 데 없는 억울함을 느끼며 슬퍼했어요. 그 속에서 전 어차피 허울뿐인 가족이었다며 가벼이 넘기려다 긴 시간에 걸려 넘어졌어요. 가족이 아니었다면 왜 이토록 질질 끌고 왔을까. 사라진 가족은 개운하기보다 화가 났고 섭섭했고 공허했습니다. 제게 크게 다가온 감각은 무기력. 긴 시간을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밥을 챙길 힘이 없어 대충 컵라면으로 때우고 일을 하려다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어 다시 누웠습니다. ‘힘든 일은 충분히 힘들자.’ ‘무기력하면 무기력하게 있자’고 생각하고 급히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다 미뤘어요. 그러곤 ‘가족'을 주제로 한 책을 잡히는 대로 읽었죠. <가족각복>, <가족을 폐지하라>,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그러면서 가족에 대해 한가지 정리된 게 있는데요. 가족은 추상적인 그 무엇이 아닌 바로 돌봄이라는 것. 가족은 서로 돌보는 관계를 의미했습니다. 돌봄이라는 건 어린이나 노인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고 다 큰 성인 어른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것이죠. 그러나 가족 안에서 돌봄을 주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나누어지는데, 대체로 저희 가족 내 모든 돌봄은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기억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늘 밥을 직접 해주었어요. 밥을 만드는 일이 그에겐 돌봄이고, 사랑이고, 책임감이었습니다. 콘셉트를 꽂아 쌀을 씻어서 앉히기만 하면 되는 전기밥솥도 있는데 엄마는 대부분 가스레인지 위에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신경 쓰이는 압력밥솥에 밥을 했어요. 전기밥솥은 해놓은 밥을 잠시 보관하는 용이었고, 압력밥솥에 남은 밥톨까지 누룽지로 살뜰하게 만들었죠. 냉장고엔, 가스레인지 위엔 항상 먹을 음식들이 가득 했어요. 그는 매일, 많은 음식을 할 뿐 아니라 정말 요리를 잘했어요. 그가 만든 밥은 늘, 항상 맛있었습니다. 못하면 그렇게 애쓰지도 않을 텐데 너무 잘해버리니 그는 기본적인 찌개, 국, 반찬은 물론 품이 많이 들어서 밖에서 사먹는 게 나은 음식까지 다 만들었어요. 돼지 뼈를 사다가 피를 빼고 기름을 버리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감자탕과 사골을 만들고 당근, 시금치, 햄, 계란을 하나하나 조리해 한입에 넣으면 두 볼이 꽉 차는 김밥을 식구들이 다 먹고도 남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생닭을 사와 식용유 한 통을 다 부어 이리저리 튀는 기름을 버티며 치킨을 완성해냈죠. 

엄마는 진심으로 성실하게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보다 가족이라는 타인이 앞서는 사람. 그래서인지 저는 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사랑을 먹는다기보다 노동을 먹는 기분이었어요. 한 끼의 식사를 해내기 위해 어떤 메뉴를 할지 고민하고, 미리 장을 봐두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고 밥을 차리고 뒷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밥에 진하게 묻은 시간과 땀과 수많은 움직임 때문에 수저가 무거웠습니다. 고마우면서 부담스럽고 마음 편치 않은 돌봄이었죠. 더욱이 밥을 챙기는 엄마의 사랑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의 돌봄이 집안에 유일한 여자인 저에게 대물림되었기 때문이에요. 엄마는 저와 말이 통한다고 느낀 초등학생 고학년 때부터 자신이 하는 돌봄을 하나씩 전해주었어요. 시작은 밥을 준비할 때 저를 불러다 식탁에 앉히는 일. 그는 저에게 간단한 재료 손질을 시켰고 요리는 어깨너머로 배우는 거라며 국물을 만들 때는 멸치, 양파, 무 등을 넣고 오래 우려내야 한다고 말하거나 뭔가 맛이 아쉬울 땐 멸치액젓을 살짝 넣으면 감칠맛이 날 거라고 했어요. 그가 말할 때 저는 귀를 쫑긋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말은 받아적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매일 수많은 일에 치여 힘들어 보이는 그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 게 좋았지만, 한편으론 그가 나에게만 이러는 게 불만이었어요. 차차 나이가 들어 4살 터울인 쌍둥이 남동생들도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늘 부엌에 앉아 엄마를 거들고 밥하는 법을 배우는 건 저뿐이었습니다. 엄마는 동생들이 아직도 어리다는 이유로, 미덥지 않다는 이유로, 남자라는 이유로 돌보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가 그들보다 한참 어릴 때 다 했던 일을 그들은 다 커서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돌봄을 받는 게 당연하게 컸고, 저는 돌봄을 하는 게 익숙하게 자랐어요.

엄마가 일하러 간 빈자리는 자연스레 제가 채우게 되었죠. 요리 해놓은 국과 반찬들이 상하지 않게 데우고 또 차리는 건 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자주 엄마가 요청한 일을 해내지 못해 어떤 음식을 버리게 되거나 다 태워 먹어서 혼이 나곤 했어요. 이 아까운 음식을 어쩌냐며, 애써 사 온 재료들과 자신이 들인 노동이 사라져 속상했는지 그의 화는 매번 불같았습니다. 엄마는 그때도 제가 아직 많은 것이 서투르고 깜빡하는 어린 사람이라는 걸 잊은거 같아요. 엄마가 없을 때 아빠의 밥을 차리는 것도 제 몫이었어요. 엄마는 동생들 밥까지는 부탁하지 않았지만 왜인지 저보다 더 어른인 아빠의 식사를 꼭 챙기라고 했어요.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그가 제게 차려준 밥보다 제가 그에게 차려준 밥이 훨~~~씬 많을 거예요. 신기한 건 그때의 저에게도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부엌일을 하는 그를 본 적이 없으니, 정말 드물게 그가 해준 음식은 김치가 가득 들어간 라면뿐이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자신의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어른이었죠. 밥을 못하는 그는 설거지도 하지 않고 먹은 밥그릇, 국그릇, 수저까지 식탁 위에 고스란히 두었어요. 제가 그에게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넣어달라고 몇 마디 하자 그는 살짝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가 민망한 듯 입꼬리를 미소 비슷하게 지으며 그릇을 옮겼습니다. 

가족이 서로 돌보는 관계라면 이래서는 안 되죠.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온 식구의 돌봄을 맡겨서는 안 될 일이죠. 그가 돈을 벌어오든, 오지 않든. 게다가 엄마는 언제나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의 기둥이었던 엄마는 집안에서도 일을 했고 가족에게 돌봄을 주기만 했어요. 그리고 가족이 정말로 돌보는 관계라면 ‘엄마'라는 역할에게 실어진 온갖 짐을 또다시 ‘딸'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대물림해선 안 되었습니다. 싫은 말은 ‘딸이 집안의 살림 밑천이다.’, ‘딸 하나가 열 아들 안 부럽다.’ 저도 모르는 새 자연스럽게 엄마의 돌봄노동을 떠안았고 원치 않았지만 돌봄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밥을 직접 해서 챙겨먹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누군가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며 도움을 줄 것이 있나 찾곤 해요. 정말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제가 잘하고 사랑하는 돌봄이 저를 괴롭히고 착취하게 만들까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도, 그 누구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돌봄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돌봄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고 매일 해야하는 것. 잘 잤는지 묻는 일, 밥을 챙기는 일, 쓸고 닦는 일, 수고했다고 토닥이는 일, 얼굴을 바라봐주는 일. 당신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기만 했다면 그 누군가는 돌봄을 주기만 하는 사람이 됩니다. 가족의 비극은 각자가 돌봄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돌봄을 받아야 하는지 몰랐기에 일어난 게 아닌가. 그토록 중요한 돌봄을 하찮게 여겨 서로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닌지. 돌보지 않는 가족 따위는 정말로 폐지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또 배가 고파지네요. ‘내 밥부터 내가 챙겨줘야지’ 침대를 빠져나와 냉장고 문을 엽니다. 잘 썰린 가래떡과 비건 만두, 냉동 파를 꺼내며 곧 먹을 따뜻하고 맑은 떡만두굿을 상상해요. 머리에 레시피 없이 몸이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당신이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먼저 돌봐주기를 바라며, 편지를 마칩니다.

2024년 3월 8일

☘️ 다정한 돌봄을 주고받고픈 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