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반대는 사랑’이라고 적었다가 쓱쓱 지웠어요. 종종 혐오와 사랑이 공존하는 순간을 느끼기 때문이죠. 과거 오랜 연인이 있었어요.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는 그 시절의 저에게 그는 늘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었어요.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먼저 손을 잡아주고, 먼저 문을 두드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아픈 날이면 시간을 내어 꼭 무언가를 전해주곤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레몬 한 조각이 띄워진 따뜻한 유자차네요. 저는 그의 안전하고 확실한, 커다란 마음 위에 누워 평온하게 행복했습니다.

그런 그와의 마지막은 단번에 끝이 났어요. 밥을 먹다가 그때 기사가 쏟아지던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 사건은 한 술집에서 여성과 남성이 시비가 붙어 쌍방폭행이 행해진 일이었습니다. 맞은 여성은 사건 현장 영상과 피해 사진들을 올려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보며 내가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고 내게도 이 일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제 반응이 과하다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하고 경찰의 말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했죠. 한없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중립을 찾으려는 그에게, 나의 두려움과 분노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에게 크게 상처받았어요. 내가 이 일을 겪더라도 그는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그가 나를 연인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깊이 존중하고 있는 걸까, 그가 내게 준 사랑은 온전하지 않구나, 느끼곤 헤어지자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다름을 재차 확인하고 끝이 났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 내가 그에게 준 사랑은 흠잡을 것 없이 완벽했는지 물었어요. 당연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순간엔 그를 쉽게 판단하고 평가했고 무게도 없는 마음을 계속 저울질하며 제가 더 주는 걸 주저했습니다. 단지 생각이 다른 것뿐이었는데 그와 쌓아온 긴 시간을 단숨에 자른 건 저였으니 아무래도 그의 사랑보단 제 사랑이 작고 못났다고 이제야 생각합니다. 왜 난 그를 오래 곁에 두고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또 달라질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그게 참 미안해서 언젠가 그를 만난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혐오 없는 사랑, 혐오 없는 일상, 혐오 없는 세상은 아마도 상상의 나라, 환상의 세계일지 몰라요. 태어날 때부터 혐오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함부로 재단되고 구분되고 억압되는 경험이 찾아오는 순간은 예측할 수 없고 이를 문제라고 인지하는 시기도 다르죠. 그게 나라는 존재에 한정될 수 있고요. 이 문제에 저항하거나 바꿔야 한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우린 태어남과 동시에 혐오 없는 사랑에 실패해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순도 100%의 투명한 사랑이 아닌 불순물 섞인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사는 우리가 서로에게 전하는 불투명하지만 사랑이라고 느끼는 걸 나눠보고 싶어요.

혐오문제에 맞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찬찬히 들어보면 이 ‘불투명한 사랑’이 느껴져요.

• “저는 우리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왕복하는 존재라는 인식, 이게 더 본질 같아요.”  책 <크게 그린 사람>

•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게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타인의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 <다정한 서술자>

• “모두를 공모자로 만드는 이 세계에서 앎은 우리를 앓게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앓으며 세계를 바꿔왔다.”  책 <그냥 사람>

• “나의 상처로부터 해방이 되려면 이 사회적인 상처를 볼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죠”  책 <상처로 숨 쉬는 법>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며 어떤 고통은 철저히 외면하고 내 상처에만 골몰했더라도, 단 한 번의 실수 없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우린 사랑을 합니다. 불투명한 사랑으로 혐오에 맞서고 다양한 존재들과 지내며 서로를 변화시키고 일상을 살도록 돌봐줍니다.

뗄 수 없는 혐오와 사랑. ‘혐오’라는 불순물 섞인 불투명한 사랑. 그동안 모보이스에서 혐오에만 집중해 왔다면, 한 달에 한 번은 사랑을 한가득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이 시간으로 애정하는 구독자들을 알고 싶고요.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이 되길 바라요. 그래서 이 자리는 당신의 자리입니다.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한 달 동안 구독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받을 거예요. 그 이야기를 매달 네 번째 금요일에 가득 담아 전할게요. 

자! 이제 당신에게 첫번째 질문을 전합니다

“'혐오'라는 불순물 섞인 불투명한 사랑, 나눈 적이 있나요? 그 사랑의 한순간을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