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차에서 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이런 말을 했어요.
“친구보다 가족에게 다정하기가 어려운 거 같아.”
죽음 앞에서 매번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를 느끼는데 왜 평소엔 가족에게 살갑지 않은지 참 어려워요. 집마다 그만의 문화나 분위기가 있을 텐데요. 아빠를 포함한 친가 쪽 친척들은 대체로 무뚝뚝해요. 경상도 지역, 남자 형제가 많은 구성, 좋은 말을 하는 걸 어색해하는 느낌 등 여러 이유가 있겠죠. 이 집안의 분위기로 긴 세월을 함께 지냈기에 굳어진 대화의 방식, 표현법을 이제 와서 바꾸기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장례를 치르는 동안 작은 변화를 시도하며 애써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같이 울고, 우는 사람 곁에서 등을 쓸어주고, 혼자 있는 사람의 옆자리에 앉고, 사촌 동생들과 그간의 일상을 나누며 연락처도 교환하고. 그러니 가족들이 제가 많이 변했다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모두들 어쩌면 무심한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가족에게 친구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표현을 해보려고 해요. 요즘 하루에 한 번씩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통화가 그 시작이 되겠죠?
(+ 애도와 회복의 시간을 보내 이번 레터엔 크게 2가지 혐오이슈만 정리했어요. 다음주는 설 연휴로 쉬어갑니다. 가족들과 충분히 슬퍼하고 위로하며 힘 채워서 돌아올게요.)
☘️무수한 존재들과 함께 살고 싶은, 무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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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퀴어 #장애인
🎵 가수 아이유의 신곡에 대한 비판이 있어요
Love Wins는 퀴어의 구호인데 이성애 사랑에 붙이는 건 문제라 말해요.
- 🏳️🌈 Love Wins(이하 러브 윈스)는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퀴어들이 사용한 구호예요. 그 후 퀴어의 사랑과 인권을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되어 온 말이죠. 이 말이 차별받지 않는 이성애 사랑이 드러난 노래 제목으로 나오자 비판을 한 것이죠.
- 이 목소리에 아이유 소속사 EDAM 엔터테인먼트는 곡 제목을 Love wins all(러브 윈스 올)로 변경했어요
- 🎤 EDAM 엔터테인먼트 “이 곡의 제목으로 인해 중요한 메시지가 흐려질 것을 우려하는 의견을 수용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두를 더욱 존중하고 응원하고자 한다. 발매될 곡에 담은 메시지와 가장 반대되는 지점의 말이 있다면 그건 ‘혐오'일 것이다. 혐오 없는 세상에서 모든 사랑이 이기기를, 누구에게도 상처 되지 않고 이 곡의 의미가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장애의 편견이 담긴 뮤직비디오 아닌가 지적해요.
- 🎥 아이유 신곡 뮤비에서 청각 장애와 시각 장애가 있는 두 인물이 나와요. 서로를 캠코더로 바라보면 장애가 사라진 것처럼 그려지고 환한 모습이 되어요. 이 때문에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거나 장애를 불행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지 비판을 받았어요. 이에 감독은 캠코더 렌즈는 사랑의 필터이며 인물의 내・외적인 모습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걸 바라보는 장치로 쓰였다고 해명했는데요. 논란이 커지자 전국장애인차별연대은 만평을 내며 이렇게 말했어요.
- 🎤 전장연 “우선 저희는 이 만평을 통해 아이유님을 비난하거나 책망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저희는 매일 아침 뮤직비디오의 “네모"같은 존재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대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현실의 “네모"와 계속 맞서 싸우려 합니다. 저희가 만들고 싶은 “캠코더 세상"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극복'되는 세상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에서 함께 사는 세상입니다. 저희는 이 “캠코더 세상”을 현실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오늘도 거리에 지하철 역으로 나갑니다. 그렇게 행동하니 세상이 바뀌기 시작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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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수의 코멘트
가장 처음 알게 된 건, EDAM 엔터테인먼트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아이유의 자필 편지였습니다. Love Wins 핑크색 글씨, ‘대혐오의 시대', ‘사랑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라는 말로 포스터 이미지는 보지도 않은 채 아이유가 퀴어의 편에 함께 해주는구나 안일하게 해석하고 이해했어요. 그날 저녁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 한 친구가 아이유의 팬인 유애나이며 이번 제목에 문제가 있다고, 앞으로 어떻게 그의 노래를 들어야할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찬찬히 친구의 이야기를, 유애나 내부에서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들었습니다. 그날 밤은 저도 모든 게 복잡했어요. 혐오문제에 예민하다면서 이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한 저를 보고 놀랐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인간이란 실수하고 반성하고 배우는 수 밖에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후 신곡 노래 제목이 바뀌었다는 소식에 조금은 안도했어요. 물론 더 강하게 퀴어 편에 서줄 수 없나 아쉬웠지만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노래가 좋아서 매일 이 곡을 듣습니다. 들으면서 마음이 쿡쿡 찔려 불편한데 또 좋은 건 좋게 느끼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모순적인 저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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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셀 #성인지감수성법리 #여성혐오
💻 ‘인셀'이라는 말, 들어봤나요?
인셀(Incel)은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라는 뜻으로 영미권에서는 극단적인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을 부르는 말로 쓰인다고 해요. 한국에서도 인셀의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죠. 주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스스로를 약자로 위치시키며 왜곡된 가치관을 키우는 이들입니다. 반성폭력 활동가이자 책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인 ‘마녀 D’는 반복되는 여성혐오범죄가 한국형 인셀 테러라고 짚으며 한겨례21기사를 썼어요. 이중 일부를 전해볼게요.
- ✨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운, 안티페미니즘을 기조로 한 정권교체 과정에서 한국형 인셀은 자신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과신하게 됐다. 넥슨 등 대기업들이 인셀이 가세한 온라인 트롤링에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한몫했다. 여성과 페미니스트의 신상을 털고 생계를 끊으며 느끼는 재미에 도취된 이들은 정작 그들의 삶을 옥죄는 현실 문제를 등한시하는데, 미디어와 정치권 등이 이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 ✨ “이 범죄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몰두하는 성향이 있었고, 그런 활동으로 강화한 가치관을 토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수사・재판 과정을 모니터링한 입장에서 봤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피해자를 ‘사람'을 인식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 “여성혐오 댓글의 등장에는 기사 조회수를 늘리려 인셀과 공생하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언론은 ‘여성은 군대를 가지 않아' 범행했다는 박씨의 말을 헤드라인으로 부각했다. 언론이나 인셀에게 중요한 건 군대였다. 인셀들은 박씨의 행동이 군복무를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형벌이라고 봤다. 국가에 책임을 묻기보다 여성을 욕하는 게 그들에겐 재미있는 놀이다.”
🧑⚖️ 성범죄 재판에서 중요한 ‘성인지 감수성 법리'
미투, 디지털 성착취 사건, 성범죄 등 젠더폭력 재판이 늘면서 2018년에 최초로 대법원 판결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을 배척해서는 안된다며 ‘성인지 감수성 법리'를 적용해 자리잡았어요. 허나 최근 성범죄 재판에서 대법원 2부가 성인지 감수성 법리를 적용한 2018년 최초의 판결을 언급하며 해당 법리가 문제인 것처럼 말해 논란이 있어요.
- ⚖️대법원 2부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해야 하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해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보더라도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있어요.
- 🎤조윤희 변호사 “성인지 감수성 법리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피해자다움의 편견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고 피해자의 말로만 유죄를 인정하라는 취지도 아니다. 이번 판결이 피해자 진술로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없다고 이해될까 우려스럽다.”
- 🎤 한국여성의전화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와 연락 혹은 만남을 지속해서, 사건 이후 수치심과 무력감이 아닌 다른 감정과 대처를 보여서, 가해자와 연인 혹은 부부관계였다는 등의 통념을 근거로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통념으로 재판 과정에서 고전하고, 신고조차 못하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본 서술은 가히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이에 대해 여성 대법관이 없는 재판부에서 판결이 내려졌다며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는 여성 대법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성인지적 관점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대법관 임용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함께 나왔습니다. 성범죄 재판이 차별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같이 관심 가져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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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방송연예대상 여자 신인상 수상한 ‘풍자’ (링크)
ㄴ이 이야기에서 이진송의 글을 가져오셨는데요, 칼럼 전체를 읽어보면 풍자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낸 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메일로 옮겨담은 내용은 너무 생략된 부분이 많아 글쓴이의 의도가 왜곡되어 읽힙니다. 다음 레터에서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시거나 꼭 전문을 읽어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셨으면 합니다.
ㄴ이 연예대상 이야기를 모보이스를 통해 접했는데요, 이진송의 칼럼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인 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신인상에는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한 퀴어에서 수상하고, 남자신인상에만 공동 수상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여성인 희극인에게는 신인상이라는 기회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아쉬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으신지, 여전히 생물학적 여성은 살기 팍팍한 세상이 아닌지 이 뉴스레터를 통해 또 한 번 좌절합니다.
✍️ 익명의 구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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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구독자님, 피드백을 전해줘서 고마워요. 좋은 말이든, 아쉬운 말이든 하지 않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일텐데 애써 시간내서 의견을 전해줘서 감사해요.
먼저 첫 번째로 말해주신 이야기는 칼럼의 일부를 가져와서 의도가 왜곡된다는 말인데요. 이 부분은 제가 작업을 하면서 더 신경써야 한다고 느껴요. 전문을 가져오기엔 어렵기에 인용을 할때는 말한 사람을 적고 관련 원문을 링크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잘 전해지도록 더 고민하고 전해보겠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함께 많은 대화를 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해요. 저도 익명의 구독자님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제 친구도 이 소식을 보곤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고민된다며 연락을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성이고 생물학적 지정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이며 페미니스트입니다. 익명의 구독자님이 무너진 자리에 저도 같이 무너져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선 서로 조금 다른 자리에 있는 거 같네요. 전 우리 사회에 여성의 자리가 없는 문제처럼, 트랜스젠더에게도 자리가 없다는 걸 문제라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에 대해 방송사・사회 시스템에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왜 남성에게 공동 수상이라는 여러 자리를 주고 여성 희극인에겐 그렇지 않았는지 방송사에게 묻고 싶어요. 그리고 왜 성별을 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 짓고 보상을 주는지 사회에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누구에게 물어야할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여성이 누구고 남성이 누구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엔 가부장적인 제도・문화가 차별적인 문제이며 성별 이분법이라는 제한된 세계로 어떤 존재를 바라보게 하는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엔 전 우리가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고 느껴요. 보내준 이야기 역시 수면 아래 가라앉지 않고 꺼내질 수 있어서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이야기를 더 많이 읽고 나누며 만나야 하지 않을까요. 관련해서 참고가 될 수 있는 관련 기사와 인터뷰 남겨보겠습니다.
📑 “트랜스젠더가 여성을 위협한다고?” 트랜스젠더・변호사 박한희 인터뷰 (링크)
📑 트랜스젠더 세 사람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노동하기' (링크)
📑 똑같이 아픈 몸입니다, 김비 작가 (링크)
📑 "시선이 더 아파"...몸 아파도 꾹 참는 트랜스젠더 (링크)
계속 이야기 나눠봐요. 전 언제나 여기 있습니다.
☘️ 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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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전해줘요
이번 모보이스를 읽고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다면 말해요
당신의 목소리가 당사자의 목소리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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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보이스 필요하다면 후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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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그와 내가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아닌 상태에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함께 지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여야 한다.
<타인을 듣는 시간>, 김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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