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돈 이야기를 해볼까요? 돈은 혐오문제만큼 예민한 것이지만, 제가 하고픈 이야기는 늘 그런 종류이니 그냥 해볼게요.

혐오문제를 말하는 모어데즈를 만든 지 이제 3년 차가 됩니다. 모어데즈는 크게 혐오이슈와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모보이스' 뉴스레터와 혐오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을 연결하는 ‘라이츠' 모임을 만들고 있어요. 그동안 라이츠는 총 4번 정도 운영했는데 모임을 함께 만드는 서포터와 수익을 5:5로 나누어 모어데즈의 수익은 약 40만 원. 거기에 오프라인으로 만나면 공간 대여비 빼고, 줌 이용료 빼고, 이런저런 간식비 빼면 남는 게 없죠. 모보이스로는 돈을 벌어본 적이 없어요. 아! 지난 레터부터 후원계좌를 열어 처음으로 2만 원이 생겼습니다. 이외에 홈페이지 관리비, 뉴스레터 발송비, 어도비 프로그램 이용료, 인스타그램 광고비, 제가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까지….사실 돈만 생각하면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훨씬 남는 일이에요. 

돈을 놓고 보자면 하는게 이상한 일인데 전 처음부터 돈을 빼고 생각했어요.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돈을 빼고 생각하는 건 제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이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커다란 두려움이 되어 돈에 집착하는 엄마의 영향이었어요. 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를 보며 어린 저에게도 돈은 꽤나 큰 요소로 자리잡았어요. 그 중요한 돈을 따라 경제학을 공부하고 시장구조와 돈의 흐름을 재밌게 혹은 흥미롭게 여겼습니다. 방학이면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고 3~4개의 금융 관련 자격증을 땄어요. 은행 인턴을 하고 들어간 첫 회사는 핀테크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주로 했던 일은 금융상품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 반년 이상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담당해 매일 수십 개의 등기부등본을 읽고 대출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평가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일상을 살아온 제가 돈을 벌지 않아도 하고픈 일이라면 혐오문제가 떠올랐어요. 혐오가 내 일상을 이토록 괴롭히고 또 다른 존재들도 아프게 하는데, 부족하지만 무언가를 하는 게 낫다고 느껴 시작한 일이죠. 이 일을 하며 얻는 건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만족감, 좋은 사람과의 만남,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대화, 진심 어린 응원이라 여기며 지금까지 해오고 있어요.

그럼에도 ‘이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이 세상은 돈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얼마 전, 고민하다가 모보이스 후원계좌를 열었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모보이스에 광고를 넣을 브랜드, 단체, 사람들을 찾아 제안을 해봐야겠다며 조금씩 움직여보고 있어요. 라이츠도 함께 협업했던 서포터와 이후를 논의하고 새로운 서포터에게 모임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참여자를 모아야 하는 이슈는 뒤로하고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은 라이츠를 열고 요리조리 운영을 해보면 또 나아질 구석을 발견하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걸어보고 있어요. 모어데즈로 돈을 벌 생각을 하면 자주 막막해져요. 사회에서 이 일로 과연 지속 가능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건가? 그럼 비영리나 시민단체 형태로 모양을 고민해야 하나? 투자는? 지원사업은? 생각을 무한히 펼치다 접고 허공을 떠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 반복해요.

그리고 나면 ‘꼭 돈을 벌어야 하는 걸까’ 질문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돈과 혐오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엔 어떤 이유로 일어나는 차별을 예방하고 금지해야 한다고 적혀있어요. 그 여러가지 이유 중 ‘학력'과 ‘고용형태'가 있어요. 이는 우리 사회에 이미 학력으로 인한 차별이 있고, 고용형태로 차별을 겪는다는 걸 뜻하죠. 학력과 고용형태는 돈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좋은 학벌이 좋은 일자리로, 좋은 일자리가 많은 돈과 연결되는 구조. 정규직과 같은 안정적인 고용이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 시스템. 이는 사회구조이자 한국 사회의 믿음인데요. 믿음의 영역으로 보자면 ‘능력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주고 보상과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 구조와 믿음이 결합해 학벌로 위계를 만들고, 뛰어난 능력으로 많은 돈을 얻는 것이라 착각하게 만듭니다. ‘능력주의’라는 믿음은 쉬이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에게 능력이 없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같은 일을 하지만 남성보다 여성들의 평균 임금이 낮은 이유는 뭘까요. 조직 내 결정권자 중 여성의 비중이 적은 이유는 뭘까요. 능력주의로 해석하자면 여성이 능력이 없어서 돈을 벌지 못하고 관리자로 승진하지 못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우린 알고 있어요.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혐오문제이죠.

혐오문제는 돈과 연결되어 차별을 만듭니다. 혐오를 마주하는 존재들은 필요한 일을 해도 충분한 돈의 보상을 받지 못하고, 또는 노동자조차 되지 못합니다. 집안과 밖에서 이뤄지는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은 저평가되며 돈으로 환산되지 않고,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받거나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임금체불을 자주 경험해요. 버스・지하철을 타지 못해 출퇴근은 멀고도 먼일이 된 장애인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벌지 않고 살아가는 동물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돈을 벌지 못하면 쓸모가 없는 걸까요? 인간은 왜 돈을 벌어야 할까요? 누군가에게 뜬구름 같은 생각을 진지하게 합니다. 진심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일에도 의미가 있고, 누구나 돈을 벌지 않아도 무사한 일상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혐오와 돈이 밀접하게 관련된 구조에서 전 그곳에 올라가기보다 무수한 존재들과 함께 잘 지낼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요. 그래서 터무니없이 ‘혁명'이라는 단어를 자주 말하곤 합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기본소득 시민단체 BIYN에서 회원들과 함께 읽은 책 <기본소득이 알려주는 것들>엔 이런 구절이 있어요.

“현대를 사는 우리가 겪는 삶의 괴로움과 막막함은,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한 현실과 그 돈을 대가로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의 불합리성에 비롯된다…기본소득이라는 사고방식은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요구사항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숨 막히는 사회 속에서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을 당장은 실현할 생각이 없을지라도 이 사고방식에 대해 논의하는데 지금-여기에서의 해방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 새로운 소득보장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은 사회로부터 부정당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긍정하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스스로 너무 급진적인 걸까, 이상적인 걸 꿈꾸는 건가 싶어요. 그럼에도 돈을 벌지 않아도 살아갈 세상을 상상하는 이유는 ‘숨 막히는 사회 속에서’ 내 일상을 ‘긍정하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벌지 못하는 모어데즈를 만드는 일을 ‘긍정하고' 싶어서 저는 현실과 이상 사이를 헤매며 막연한 질문을 던지고 상상합니다. 무엇보다 혐오 때문에 돈에서도 차별받는 문제를 생각하자면 혐오문제를 말하는 모어데즈는 돈을 버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작은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은가 싶어요. 그와 동시에 이 일이 돈을 벌지 못해도 의미 있다고 말하면서요.

질문은 많지만 아무것도 답을 내린 건 없어요. 돈의 문제는 혐오문제처럼 결코 혼자서 해결할 수도 없어요. 그렇기에 이 편지는 같은 구조 속에 사는 당신에게 하는 질문이며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는 초대예요. 우린 다르게 돈을 벌 수 있을까요? 돈을 벌지 않아도 어떤 일을, 어떤 존재를 의미있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2024년 1월 12일

☘️돈에서 자유롭고 싶은 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