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이런 순간이 있나요?
며칠 전, 은둔고립청년 멘토링이 있는 날이었어요. 이야기를 나눈 분은 그동안 참아왔던 일터에서의 일을 말해주셨습니다. 3개월 전에 그만두었지만 이제야 털어놓은 이야기.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 모욕적으로 대하던 상사를 이해하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일터에선 모든 사람이 힘드니까.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해되지 않았고 회피하고 묵혀두었는데 지난주부터 터져버려 밤새 울며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회사 내 신고함에 글을 적고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고 그래도 마음이 진정이 안 되어 자살예방상담전화를 걸고 지역상담센터 상담도 예약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얼마나 힘들었냐고, 잘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프지만 속이 시원하다고 했습니다. 조금씩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에 가득 찬 울음을 비워내면 빈자리가 희망으로 채워지는구나, 느꼈습니다. 만남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창밖엔 노란 은행잎이 눈부시게 반짝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아름다운 가을날, 버스에서 그렇게 울었습니다. 누군가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고, 누군가가 흘리지 못한 눈물도 내 것이 되는 순간. 당신도 이런 순간이 있나요?
☘️무수한 존재들과 함께 살고 싶은, 무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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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대학 #페미니즘
🏫 여성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여대’
동덕여대가 남녀 공학으로 바뀔 움직임을 보이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대학 캠퍼스 바닥에 학교 점퍼를 놓아두고 근조화환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빨간 페인트로 강력한 문구들도 적혀있습니다. 여대의 공학 전환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학들은 학생들을 모으기 점점 힘들어지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학 전환을 이야기하는데요. 20215년 덕성여대, 2018년 성신여대에서도 공학 전환을 추진했었지만 학생들의 반대로 중단되었습니다. 여대를 지키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 🎤동덕여대 2학년 ㄱ님 “여대에서 배우고 여성으로서 주체가 돼 본 경험이 여성 혐오적인 현 시대를 이겨내는 바탕이 될거라 생각한다.”
- 🎤동덕여대 인문대 학생회 ㄴ님 “동덕여대는 ‘여성과 노동’, ‘여성심리학’ 같은 여성 관련 교양 과목이 많다. 수업에서도 페미니즘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꺼내는 분위긴데, 공학에서는 이러한 교양 과목이 개설되기조차 어려울 것.”
- 🎤이송희 동덕여대 총력대응위원회 공동위원장 “페미니스트로 의심되는 여성을 향한 검열, 숏컷 여성 폭행 등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동덕여대는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이자 생존의 공간이었다. 스스로 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은 학교의 설립 취지와 반하는 것.”
이에 성신여대와 덕성여대에서도 연대의 뜻을 밝히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동덕여대는 공학전환은 아직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다며 향후 추진 방향을 논의해 알리겠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최근 여대를 재해석하는 ‘여성혐오와 여자대학, 그 변화의 시작’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기획연구위원 “여대의 현재적 의미 재구성이라는 차원에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선교사와 사회지도층 등 설립자와 성취 중심 역사가 아닌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옹호하고 성차별에 저항해온 여성 고등교육 기관으로 상징 체계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 🎤이은하 이화여대 여성학 교수 “여자대학은 그 자체로 옳거나 정당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성과 위치, 새로운 질문을 통해 의미가 변화해 왔으며 또 변화해 가야한다. 주변인의 관점과 경험에서 새 지식을 만들어 가는 여자대학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여전히 유효하며, 어떻게 이 역할을 해갈 것인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
-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 교수 “여대가 단순히 여학생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소수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페미니즘 정체성을 지키는 데 앞장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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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수의 코멘트
이 사건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졸업한 여대를 사랑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는 여대가 처음으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공간이라 말했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학교에서도 ‘여성’이라 겪어야 하는 불쾌한 일에 말하지 못하고 참았는데 여대에 가서야 여성이 아닌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활동하고 공부하며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성차별이 너무도 공고한 이 세상에서 여대는 차별 자체를 없애준, 어쩌면 우리가 살고픈 세상을 처음 만나게 해준 공동체였던 것이죠. 안전한 공간과 사람을 만난 뒤에야 문제가 인식되고, 문제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여대를 사라지게 하는 건 하나의 귀한 공동체를 없애는 일이구나. 이 일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아도, 사회에 나와 안전한 커뮤니티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선택지로 고려하는 ‘대학’이라는 곳에서 가치관을 쌓아가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또 한편 친구와 ‘2020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 포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나누며 여대의 소멸이 아닌 여대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생물학적 여성만이 다니는 여대가 아닌, 자신을 여성이라 여기는 다양한 여성들이 배우는 공간이 여대가 되길. 대화를 나눈 뒤 내가 여대를 다녔다면 어떤 삶의 선택을 하며 살았을지, 내 주변 관계들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기분 좋은 상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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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이주아동 #이주노동자
🌏 체류자격으로 흔들리는 일상, 이주민의 일생
‘강태완’. 5살의 태완님은 엄마를 따라 몽골에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태완은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2021년, 국내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자격을 준다는 법무부에게 구제대책 대상 요건을 완화해 달라는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국이 고향인 태완님은 25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등록증을 받고 기뻐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의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3월부터 전북 김제에 전기 특장차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취직했습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게 좋다고 했던 태완님은 10톤짜리 장비를 테스트 하다가 몸에 끼어 2024년 11월 8일 사망했습니다. 이 슬프고 참혹한 죽음에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태완은 저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습니다. 제가 죽으면 저를 추억하면서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었습니다. 허망하다, 비통하다, 참담하다라는 말로는 제 심정을 다 표현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태완이 남기고 간 숙제가 있기 때문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태완이 당한 사고가 철저히 조사되고,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고,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 🎤이주노동자평등연대 “강태완님의 인생은 미등록 이주아동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인간답게 살아가기 힘든지 보여줍니다. 남들처럼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도, 미래의 꿈을 그릴 수도 없고 대학도 갈 수 없었습니다. 체류비자가 없었던 미등록 상태에서부터 자진출국, 단기비자로 재입국, 유학생 비자, 지역특화비자에 이어 산재사망사고에 이르기까지 체류자격에 저당잡히고 결국은 산업안전이 부실한 현장에서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이주 청년노동자의 초상이 너무나 처절합니다.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미등록 이주아동 정책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입니까. 왜 산업현장은 아직도 노동자가 죽을 만큼 위험합니까. 왜 체류자격으로 사람을 옭아매고 비자로 이주민의 인생을 좌지우지 합니까.”
회사 에이치알이앤아이는 현재 경찰과 노동부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유족들에게 사고에 대한 이유, 대책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유족들은 중대재해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엄중히 물으며 목소리 내고 있어요. 산재사고 수습을 위해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모금도 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21-0810349, 예금주 김사강) 이 일에 함께 관심가져주시고 힘 보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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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운 선생님과 정신분석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요. 오늘도 잠시 후 회기를 진행하고요. 그분에게 주욱 제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이 힘들다고 외치는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객관적으로 힘들게 없어요. 저보다 힘든 사람이 너무도 많고요. 제가 지금 힘든 것도 제 과거 행동의 결과니까 제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계속 제 마음이 힘들어 보이고 그런 저를 측은하게 바라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어요. 왜일까요.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남 앞에서 울어본 기억이 없는 저였습니다. 나는 힘들지 않다. 계속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지 못할 때 회피하는 패턴이 강해지고 중독에 빠져 버텨내는 시간이 장기적으로 고착화된 저였습니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순 있어요. 원래 사랑이 많은 저이지만 살아가면서 그 아이와 결별하게 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니 계속 불안하고 화가 나고 솔직해지지 못하게 되었고요. 관계를 맺을 때 근본적인 신뢰의 문제를 안고 있게 되었습니다. 솔직한 나를 보여주고 수용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자주 먹먹해집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이 익숙해지지 않아요. 아직 울지는 못하겠습니다. 여전히 전 좋은 환경에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제 마음이 힘들다고 인정해도 괜찮겠죠. 우리는 모두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났는데 그걸 못하고 살면 누구라도 힘들테니까요.
혐오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어찌보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해요. 혐오는 존재할 수 있어요. 혐오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걸 인지하는 과정이 필요해보여요. 제 경우에선 타인을 혐오하는 건 방어기제였습니다. 내가 힘들고 취약하다는 걸 먼저 받아들이고 표현하고 그걸 안전한 환경에서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리고 내가 먼저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면 살면서 제가 표현한 혐오가 훨씬 덜 했을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 봐주세요. 당신 내면의 아이는 원래 어떻게 살고 싶어했나요. 그 아이와 이별하진 않았나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나요. 그게 자유롭지 않다면 당신은 아마 힘든 상태일 거예요. 스스로를 안아주세요. 그래, 너 힘들 수 있겠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풀릴 수 있어요. 선생님이 먹먹한 마음이 들 땐 움직임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밖에 나가 산책을 해보세요. 강아지들도 매일 산책시키는데 우리에게도 산책을 매일 시켜주세요.
무수의 편지를 보고 괜히 이렇게 쓰고 싶어졌습니다. 무수의 편지는 진심이 느껴져서 좋아요. 혐오에 대한 뉴스를 계속 챙겨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본질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 같고 이 부분을 더 반복해서 전달하고 싶어요. 당신의 마음은 정말 약하다. 환경이 중요하다. ‘서로에게 환경이 되어주자. 그러면 아이들처럼 자연스러울거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게.’
💌 익명의 구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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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레터 ‘무수의 편지’를 읽고 깊고 진솔한 답장을 보내주어 고마워요. 이 글을 여러번 읽고 읽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유독 오래 머물렀던 문장은 ‘그럼에도 제 마음이 힘들다고 인정해도 괜찮겠죠.’ 입니다. 눈물이 날 거 같은데도 꾹 참고, 힘든데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연필을 꽉 잡고 꾹꾹 눌러쓰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당신 마음이 힘들다고 인정해도 괜찮아요. 당신이 부족함 없는 좋은 환경을 가졌을지라도, 당신보다 힘든 사람들이 많이 보일지라도, 과거에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지라도. 부디 당신이 힘들다고 말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눈물이 날 거 같을 때 펑펑 울기를 바라요. 당신의 상처는 누군가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어요. 비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아픔은 그 자체로 아픔입니다. 그러니 힘들다고 이야기해요.
당신은 힘든 와중에도 타인에게 좋은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요. 위 글을 적는 순간만큼은 결별했던 사랑이 많은 어린 당신과 손을 맞잡은거 같았습니다. 우리에게 적어준 다정한 말을 당신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사랑이 가득한 당신을 스스로 안아주세요. 약한 마음이 올라오면 ‘힘들었구나’ 하며 들어주세요. 마음이 먹먹할 때 목적지 없는 산책을 해요. 햇볕에 반짝이는 단풍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울컥 코끝의 찡함을 느껴봐요.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줍듯, 당신이 놓쳤던 사랑을 다시 발견하고 기억해요. 가을은 외로워지기 쉬운 계절이지만, 그 덕분에 취약한 자신을 만나고 안아주기 좋은 시절인 거 같습니다. 마음속 깊은 사랑이 당신의 몸에 흐르고, 자연스럽게 타인과 세상으로 퍼져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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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전해줘요
이번 모보이스를 읽고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다면 말해요
당신의 목소리가 당사자의 목소리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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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한 교우관계의 비결을 묻자 한국에 왔을 때 친구들이 저를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가 누군가를 믿어줄 때 그 사람이 또다른 누군가를 믿고 반기면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배척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그는 일찍이 스스로 최초의 원인이 되어 '믿음의 벨트'를 형성했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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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데즈ㅣMORE DAZZ
이메일 hello@moredaz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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