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힘든 당신에게

“동생들은 가구 같아.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무언가. 같이 사는데 존재감이 없어.”

부모님이 시골로 가고 4살 터울 쌍둥이 남동생들과 셋이 산 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동생에 관해 물었을 때, ‘가구 같다’고 말할 정도로 접점이 없는 관계로 지내왔어요. 부모가 같다는 것 말고는 성별도, 가치관도, 생각도, 취향도 모두 다른 그들과 같이 사는 건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라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같은 집에서 살며 대화도 없이 각자 흩어져서 밥을 먹고 일요일 오전에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정도의 일상이 당연하고 이상하지 않았죠. 그들에게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기에 실망도 없었습니다. 1년에 한 번, 그들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며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내 생일이 씁쓸한 것 말고는. 그런데 2년 전 10.29 이태원 참사로 크게 무너져 심리상담을 받는데 상담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혼자 사는 게 어때요? 그렇게 지내는 건 혼자 사는 것보다 더 안 좋아요.”

혼자 사는 게 더 나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마음을 깊이, 찬찬히 봐주는 상담사 선생님의 말씀이니 정말 문제가 있는 상황이구나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태원 참사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참사 소식을 뒤늦게 알곤 저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힘들었어요. 그날 나도 그 동네에 있었는데 그때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구나, 평범한 서울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는데 난 왜 살아있어야 할까, 막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는데 옆방에 동생들은 그날 열린 게임경기 방송을 보며 웃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깊이 아파 울고 있을 때, 같이 사는 사람이라면 힘든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고 신경 써줘야 하는 것인데, 우린 서로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집에서 살면서도. 

사실 우린 온 가족이 같은 집에서 살 때부터 단절되어 왔습니다. 이걸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 기분입니다. 각각이 멀찍이 떨어진 섬과 같달까요. 고립에는 물리적 고립과 정서적 고립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가족과 지내면서 오래 정서적 고립 상태였다고 뒤늦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심각한 사건이 있던 건 아니고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라 그만큼 평범한 문제였습니다. 온 가족이 같이 여행을 간 적은 1~2번 정도, 약 10년간 부모님이 24시간 슈퍼를 운영하셨을 때는 식탁에 앉아 같이 밥을 나눠 먹은 적도 손에 꼽습니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는 주로 앞날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가게 운영이 어렵다, 회사는 잘 다니고 있나,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취업 준비를 해나가곤 있는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깔린 대화에서 아무도 불안하다고 말하지 않은 채 자신을, 서로를 다그쳤던 거 같습니다. 그 가족 안에서 저희 남매는 서로가 누군지 잘 모른 채 회사에 다니는 누나, 대학에 다니는 첫째 동생, 공업고등학교 나와 일찍 사회생활을 하는 둘째 동생으로만 인식하고 지냈습니다. 

남매라는 이름을 뒤받쳐줄 추억이 없던 사이인데, 제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이 사회에서 내 위치를 이해하며 동생들과 더 불편해졌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여성혐오 사건들이 터지고 있는데 왜 동생들은 아무 관심도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정말 가끔 혐오 문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기사 댓글 창에서 악플이라고 느꼈던 말들이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그럴 때면 밥맛이 뚝 떨어져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분노하며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한번은 동생이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는데, 그게 혐오 발언을 일삼고 교제 폭력으로 기사가 났던 유튜버의 방송이라는 걸 알고 고민하다가 그 유튜버에 관한 기사를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곤 ‘네가 뭘 보는지는 너의 선택이지만 네가 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난 불편하니까 내가 그 영상을 보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고 소리도 작게 줄이거나 이어폰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런 크고 작은 어긋남을 겪으며 저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며 지쳤고 점차 동생과 가벼운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집에 있을 때는 방문을 꼭 닫아 잠갔습니다. 

상담사 선생님 “동생들과 약속을 잡고 밥을 먹어보면 어때요?”

무수 “별로 그러고 싶지 않고, 약속 잡는 것도 다 제가 신경 써야 할 거 같아서 부담스러워요.”

상담사 선생님 “동생들에게 약속 잡는 거 시켜요!”

무수 “오 좋은데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동생들이 할진 모르겠지만 말해볼게요.”

그렇게 삼남매의 한 달 한 번 밥 약속이 시작되었습니다. 달마다 돌아가면서 약속 날짜를 정하고 식사할 곳을 찾았습니다. 밥을 먹고 카페로, 밥 먹으면서 술 한잔을. 우리가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할 때마다 서로를 새롭게 이해하는 순간을 마주했습니다. 제가 오래 방문을 닫고 있었기에 혼자 있는 게 편한 사람이라고 여겼다는 동생들의 이야기, 친구들을 좋아해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둘째 동생은 요즘은 다시 혼자서도 시간을 채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첫째 동생은 페미니즘에 대해선 여전히 거부감이 있는거 같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대해서는 저와 비슷하게 공감하며 이 행동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분노했습니다. 약속이 이어지며 동생들은 비건인 제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불편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것, 거부하는 것을 물어보고 기억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동생들과 만나는 시간이 점점 즐거워지더라고요. ‘생각보다 대화가 되는데?’ 동생들과 이야기가 쉽게 풀려 신기하면서 달라진 동생은 외면한 채 어릴 적 모습으로만 바라본 저의 좁은 시선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약속한 날이 아니라도 종종 대화를 나누며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서 투명하게 공유하고 원하는 걸 명확하게 요구해요. 그 속에 괜한 화・짜증이 섞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 2월이면 둘째 동생이 결혼해서 정말로 따로 살게 될 예정이에요. 같이 살 땐 언제 헤어지나 아득하게 막막했는데 이젠 삼남매의 약속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아쉽습니다. 더 일찍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는 게 미안해요. 저는 왜 이 와중에도 미안할까요. 누나인 것도, 장녀인 것도 다 던져버리고 싶은데 가족을 생각하면 늘 그게 어렵습니다. 곧 다가올 헤어짐으로 또 단절되지 않도록 남은 삼남매의 약속에 순간순간 진심이길, 마주 앉은 동생을 존중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노력해 보려고요! 언젠가 동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정말 모르겠는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또 편지에 적어볼게요.

2024년 6월 7일

☘️ 사랑한다는 말이 쉽기를 바라는 무수가